• 최종편집 2026-04-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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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우석 평론가, 예장합동 소강석 목사 행보 강하게 비판
    조우석 뉴스스타운 주필이 최근 본인의 유튜브채널에서 소강석 목사의 문제를 제게하였다.영상캡처 중앙일보 기자 출신의 조우석 뉴스타운 주필이 최근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합동) 소강석 총회장의 공적 행보를 강하게 비판하는 내용의 영상을 공개해 주목을 받고 있다. 조 평론가는 소 목사가 보수 교단의 지도자로서 일관성 있는 행보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집중 거론했다. 코로나19 방역 국면에서의 태도 논란 조 평론가는 코로나19 확산 당시 소 목사가 정부 방역 지침에 협조하며 교회의 자성을 촉구하는 발언을 한 것을 문제 삼았다. 그는 이러한 태도가 당시 정권의 이른바 ‘정치 방역’ 기조에 편승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보수 교단의 수장이 교회의 입장을 충분히 변호하지 않고 오히려 사회적 비판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비판했다. 조 평론가는 또 소 목사가 일부 신앙 공동체의 신념을 ‘광적인 신앙’이라고 표현한 것을 두고, 이것이 교회 내 보수적 목소리를 스스로 낮추는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소 목사가 ‘좌우 이념에 매몰되지 않는 열린 교회론’을 표방하며 진보 성향 매체와 인터뷰를 가진 것도 보수 교단 지도자로서의 정체성과 괴리된 행동이라고 규정했다. 북한 교회 방문 이력과 대북 교류 활동 조 평론가는 소 목사가 2014년 북한 봉수교회를 방문하는 등 총 10여 차례 평양을 다녀온 공식 이력이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봉수교회가 북한 당국이 외부에 보여주기 위해 운영하는 이른바 ‘관제 교회’라는 점을 지적하며, 그곳에서 남북 공동 기도회를 여는 방식의 교류가 실질적인 종교의 자유 확대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조 평론가는 또 소 목사가 “통일은 곧 진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을 거론하며,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를 중시하는 보수 교단의 기조와 충돌할 수 있는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북한 체제의 실상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진행되는 대북 교류는 북한 정권에 명분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칼빈 신학 해석 논쟁 조우석 평론가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소강석 목사가 스스로 모순된 행보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영상캡처 비판의 배경과 한계 조 평론가는 이번 비판이 개인에 대한 감정적 공격이 아니라 한국 교회와 대한민국의 정체성 수호를 위한 문제 제기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교회가 사회적·정치적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를 지키는 보루로 서야 한다는 소신을 밝혔다. 다만 이번 비판은 조우석 평론가 개인의 시각에 근거한 것이며, 소강석 목사 측의 공식 입장이나 반론은 이 기사에서 별도로 확인되지 않았다. 향후 소 목사 측의 반론이 있으면 게재할 수 있으며, 소 목사측의 입장을 추가 취재해 보도할 예정이다. ※ 편집자 주: 본 기사는 조우석 평론가의 공개 방송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한 보도 기사입니다. 해당 방송에서 제기된 주장 중 일부는 객관적 근거가 충분히 제시되지 않은 의견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독자 여러분의 비판적 판단이 요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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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18
  • 기독교인 비율 반등…'불신'보다 무서운 '무관심'의 벽
    목회데이터연구소 제공 지속적인 탈종교화 흐름 속에서 마침내 반전의 신호가 감지됐다. 한국갤럽이 최근 공개한 '한국인의 종교 1983~2025'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2년과 2024년에 역대 최저치(37%)까지 떨어졌던 우리나라 종교 인구 비율이 2025년 40%를 회복하며 3년 만에 반등에 성공했다. 특히 기독교인 비율은 2024년부터 상승세로 돌아서 2025년 18%를 기록, 불교(16%)와 가톨릭(6%)을 제치고 3대 종교 중 선두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이번 조사는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7,647명을 대상으로 2025년 3월부터 11월까지 한국갤럽이 면접조사 방식으로 수행한 것으로, 95% 신뢰수준에서 표본오차는 ±1.1%p다. 2004년 이후 첫 반등…탈종교화의 '가파른 기세' 일단 저지 한국 사회의 종교 인구는 1983년 44%에서 출발해 2004년 54%로 정점을 찍은 뒤 줄곧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2013년 50%였던 비율은 10년 사이에 37%까지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2025년 조사에서는 전년 대비 3%포인트 상승한 40%를 기록하며 장기 하락세에 제동이 걸렸다. 무종교 인구는 여전히 60%로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2020년 이후 60%대 초반에서 정체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탈종교화의 속도가 눈에 띄게 둔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성별로는 10년 전(2015년)과 비교해 남성 종교인 비율이 41%에서 31%로 10%포인트 하락한 반면, 여성은 55%에서 49%로 6%포인트 떨어져 남성의 감소폭이 더 크게 나타났다. 연령별로는 전 연령대에서 8~12%포인트 하락했으며, 60세 이상만이 52%로 절반을 지켜낸 것으로 확인됐다. 청년층에서도 기독교 독보적 우위 이번 조사에서 주목할 만한 또 다른 지점은 청년층에서의 기독교 우위다. 40대 이하 연령층에서 기독교는 불교와 가톨릭을 크게 앞서고 있다. 19~29세 응답자 중 기독교인 비율은 14%로, 불교(4%)와 가톨릭(6%)을 훨씬 웃돈다. 30대에서도 기독교 16%에 비해 불교 6%, 가톨릭 7%로 격차가 뚜렷하다. 이는 기성세대에서 불교 세력이 강한 것과 달리, 젊은 세대로 갈수록 기독교가 종교적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반면 60세 이상에서는 불교(27%)가 기독교(18%)를 크게 앞서 세대 간 종교 지형의 뚜렷한 대비를 보여줬다. 성별로는 여성 기독교인 비율이 23%로 남성(13%)의 거의 두 배에 달했다. 목회데이터연구소 제공 신앙 실천 면에서도 기독교인의 경건 생활은 타 종교를 압도한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성경(경전)을 읽는다'는 응답에서 기독교인은 61%로 종교인 전체 평균(38%)을 크게 웃돌았다. 이는 가톨릭(45%)보다 16%포인트, 불교(6%)와 비교하면 무려 10배 이상 높은 수치다. '하루에 한 번 이상 기도한다'는 항목에서도 기독교인(43%)이 가톨릭(39%), 종교인 전체 평균(29%), 불교(7%)를 모두 앞섰다. 진짜 위기는 '이탈'이 아니라 '무경험'과 '무관심' 그러나 반등의 소식이 마냥 낙관적일 수만은 없다. 무종교인의 종교 인식을 들여다보면 더욱 근본적인 과제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우선 '과거에 종교를 믿은 적이 있다'는 무종교인의 비율이 2025년 22%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뒤집어 말하면, 현재 무종교인 중 78%가 평생 어떤 종교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순수 무종교인'이라는 뜻이다. 탈종교화가 단순한 신앙 이탈을 넘어 '종교 무경험'이 사회에 고착되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는 경고다. 과거 신앙 경험이 있는 무종교인 중에서는 기독교 출신이 51%로 가장 많았고, 불교(34%), 가톨릭(15%) 순이었다. 이는 타 종교에 비해 기독교에서 무종교로 이탈한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음을 보여주는 수치이기도 하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무종교인의 종교 호감도다. 무종교인 3명 중 2명(67%)은 '호감 가는 종교가 전혀 없다'고 답했다. 이 비율은 2004년 33%, 2014년 46%, 2021년 61%에서 지속적으로 상승해온 것으로, 종교 전반에 대한 사회적 거리감이 구조적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목회데이터연구소 제공 종교를 믿지 않는 이유로는 '관심이 없어서'가 52%로 가장 높았고, '정신적·시간적 여유가 없어서'(20%), '종교에 대한 불신과 실망'(13%)이 뒤를 이었다. 과거의 탈종교화가 종교에 대한 실망에서 비롯된 적극적 '이탈'이었다면, 이제는 종교를 삶의 선택지에서 아예 지워버린 '심리적 단절'의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무관심의 벽'을 넘는 것이 한국 교회의 새 과제 목회데이터연구소는 이번 조사 결과에 대해 이렇게 제언했다. 첫째, 반등의 신호를 발판 삼아 패배주의를 극복하고, 교회를 찾는 이들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정착시키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단순한 수적 증가를 목표로 하는 전도를 넘어, 새가족 정착과 양육 시스템을 보다 체계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 '무관심의 벽'을 넘기 위해 종교적 권위를 내려놓고 '일상의 접점'을 회복해야 한다. 공격적인 전도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시대, 교회는 종교적 의무를 강요하는 공간이 아니라 고단한 일상의 짐을 덜어주는 안식처이자 의미 있는 관계를 제공하는 공동체로서의 매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진단이다. 목회데이터연구소 제공 한편 초자연적 세계관에 관한 조사에서는 우리 국민의 57%가 '기적이 존재한다'고 응답해, 종교인 비율(40%)을 훨씬 웃도는 수치를 나타냈다. 이는 무종교인이라 하더라도 초월적 차원에 대한 내면의 갈망이 여전히 존재함을 시사하는 대목으로, 한국 교회가 복음 전도의 접점을 찾는 데 있어 새로운 가능성의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들이신 것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롬 15:7). 반등의 봄바람이 불기 시작한 한국 교회 앞에 놓인 과제는 분명하다. 문을 여는 것, 그리고 찾아오는 이를 진심으로 맞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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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17
  • 화제의 책/대한민국 안에 숨겨진 또 하나의 나라
    "22세기에도 대한민국은 살아 있을까." 도발적이다 못해 서늘한 이 질문 하나가 책의 표지를 뚫고 나온다. 2026년 1월, 세이지 출판사가 펴낸 김미영 VON뉴스 대표의 신작 〈숨은민국—주체사상파·부정선거·북한인권 그리고 마이 라이프〉는 출간과 동시에 보수 기독교 지식인 사회와 안보·이념 논쟁 진영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저자가 수십 년에 걸쳐 언론 현장과 북한인권 운동, 국제인권 무대에서 축적해 온 문제의식과 경험을 집대성한 이 책은, 단순한 이념 고발서도 정치 비평서도 아니다. 대한민국의 건국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직시된 적 없는 '보이지 않는 나라'의 실체를 추적한, 한국 현대사 최전선의 기록이다. 2024년 12월 3일이 촉발한 각성 이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오랜 잉태의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결정적 계기는 뚜렷하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2024년 12월 3일의 계엄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밝힌다. 그 사건을 통해 이 책의 주제를 공유할 독자들이 제법 있을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계엄 선포와 그 후폭풍으로 한국 사회가 격렬하게 요동치던 그 시점에, 저자는 비로소 자신이 평생 가슴에 품어 온 질문을 세상 앞에 내놓을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좌파와 우파, 보수와 진보라는 단순한 이분법으로는 더 이상 한국의 현실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확신이 '숨은민국'이라는 개념을 탄생시켰다. 저자가 이 책에서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위기의 뿌리를 "보이지 않게 작동해 온 또 하나의 나라", 즉 '숨은민국'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1945년 해방 이후 한반도는 38선을 경계로 남과 북으로 갈라졌지만, 저자의 시선에 따르면 분단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휴전선을 사이에 둔 물리적 분단과 더불어, 대한민국 내부에서는 수평이 아닌 수직의 분열, 다시 말해 '위의 나라'와 '아래로 숨은 나라'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숨은민국'과 '은국민'이란 무엇인가 〈숨은민국〉이 제시하는 개념적 틀은 독특하고 도전적이다. 1945년 38선으로 남북이 갈린 한반도는 6·25전쟁을 거쳐 1953년부터는 휴전선이라는 더 길고 넓은 경계선으로 갈렸다. 그러나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만 갈린 것이 아니었다. 대한민국도 다시 두 개의 나라로 갈렸다. 수평적이 아니라 수직적으로, 하나는 위로 하나는 아래로 갈렸다. 이 두 개의 나라 중 한 나라는 아래로 '숨은' 나라였다. 저자는 이 숨은 나라의 구성원을 '은국민(隱國民)'이라 명명한다. 대한민국 국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실상은 '숨은민국'의 국민이 적지 않으며, 대한민국의 건국과 존재 이유를 거부하면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는 그들의 실상이 바로 '은국민'이다. 은국민들은 한국인을 통칭하여 극우라고 부른다. 그러면서 저자는 명확한 경고를 덧붙인다. 저자는 숨은민국을 북한이나 중국 공산당의 단순한 하수인으로 축소하는 시각을 경계한다. 오히려 그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된 신념·조직·인적 네트워크를 갖춘 '복잡계'이며, 한국 사회의 문화·지식·정치 영역 깊숙이 뿌리내려 왔다고 주장한다. 책의 제목을 거꾸로 읽으면 '국민은 숨(breath)'이 된다는 분석도 주목할 만하다. 제목을 통해 국민의 목숨이 걸린 대한민국 상황에서 숨은민국이 대한민국의 숨통을 조이고 있는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출판기념회에서 책을 설명하는 저자 김미영 대표(동영상 캡처) 두 개의 지하정당에서 북한인권까지 책은 크게 세 개의 축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는 '숨은민국'을 움직여 온 두 개의 지하정당에 대한 역사적 추적이다. 숨은민국에 접근하는 방법으로 이 책에서 선택한 것은 두 개의 정당에 다가가는 것이다. 은국에 여러 개의 지하정당이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두 개의 정당으로 특정하는 것은 통일혁명당(통혁당)과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이다. 저자의 분석은 단호하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조용히 점령한 은국의 지도부는 통혁당, 그리고 은국민 대중은 민혁당을 통해서 대거 양산되었다고 보고 있다. 이 두 정당은 불법적 비밀정당 형태였지만 실체로서 존재했고, 몸을 숨길 뿐 사라진 적이 없다. 나아가 1960년대의 통혁당은 1990년대의 민혁당과 본질적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 주장이다. 두 번째 축은 주체사상파, 이른바 주사파에 대한 저자 본인의 장기 취재 기록이다. 1999년 '월간조선'과 '시대정신' 등을 통해 이루어진 김영환 그룹과의 인터뷰, 그리고 '전향'이 아닌 '전환'이라는 표현을 둘러싼 논쟁은 당시 한국 지성계와 운동권 내부의 인식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북한 정권의 건국 정통성을 인정한다는 발언이 대한민국 헌법과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 사상적 모순이 오늘날까지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를 추적한다. 세 번째 축은 북한인권 문제다. 중후반부로 갈수록 책은 북한인권 문제로 무게중심을 옮긴다. 김미영 대표는 1999년 이후 북한인권 운동에 투신해 전시·전후 납북자 구출 운동·정치범수용소 해체 운동·'통영의 딸' 구출 운동 등 굵직한 현안의 최전선에 서 왔다. 저자가 말하는 7가지 역사적 진단 저자는 이 책이 담고 있는 핵심 내용을 7가지로 정리한다. 한반도에서 공산주의자들의 권력 의지가 100년 이상 치열하게 지속되어 왔다는 것,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절대적인 적이 상존한다는 것, 대한민국과 우방국을 위협하는 공작망이 실재한다는 것, 반체제 지식인들에 대한 혁명 세화 공작이 종북 지하당의 건설로 이어졌다는 것(4·19 직후 통일혁명당, 5·18 이후 민족민주혁명당), 통혁당과 민혁당의 특징과 정치 세력화 성공, 지하 정당의 변신과 보수 우파 정당과의 화학적 결합에 따른 합법 정당 설립, 그리고 진정한 대한민국의 제도 정당 실종 상태가 그것이다. 숨은민국의 최종 귀결점에 대한 저자의 진단도 명확하다. 저자는 '숨은민국'의 귀결점은 결국 '원 차이나'이며 주사파·민혁당은 그것을 '중국식 개혁 개방'이란 말로 포장하여 북한의 나아갈 길이라고 말해 왔다고 분석한다. '중국식 개혁 개방'이란 '자유선거가 없는 시장경제'를 말하며 중국이 그런 체제를 성공적으로 만들어 왔다고 선전해온 것이라는 설명이다. 전쟁의 끝자락에서 희망을 말하다 프롤로그의 제목은 "어떤 전쟁의 끝자락에서"다. 저자는 이 제목 하나로 자신이 평생 살아온 삶의 좌표를 압축한다. 이미 수십 년째 이념 전쟁의 한복판을 걸어온 사람의 목소리로, 그는 독자들에게 이 책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분명히 밝힌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진정한 대한민국 사람들, 보통의 선량한 '한국인들'을 위한 것이다. 또한 자신의 국적을 정확히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쓴다. 실상은 '숨은민국'의 국민이 되어 살아가고 있으면서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라는 모종의 불안감이 있는 사람도 이 책의 독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결론부에서 저자는 절망이 아니라 희망을 선택한다. 숨은민국은 결코 단순하지도 만만치도 않다. 명백히 '복잡계'다. 그들의 신념도 이해해야 하지만 그들의 실력도 이해해야 한다. 그들의 신념과 실력을 압도할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세대가 나타나야 한다. 이 결론은 고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향한 호소로 마무리된다는 점에서 이 책의 성격을 규정한다. 저자 김미영은 누구인가 이 책의 무게는 저자의 이력과 분리될 수 없다. 저자 김미영은 서울대 국문과와 대학원(한국현대문학 석사)을 마치고, 한동대 국제법률대학원과 미국 노틀담 대학 법대에서 미국법과 국제인권법을 공부했다. 주체사상파(주사파) 학생운동권 전향 문제 특종으로 조선일보에 특채되어 북한문제를 주로 다루는 기자로 일했다. 책을 통해 한국의 현 상황의 위기를 경고하는 김미영 대표 그의 삶은 책상 위의 이론이 아니었다. 1999년부터 북한인권 운동에 투신하여 전후·전시 납북자구출운동에 헌신했고, 한국전쟁납북사건자료원 연구실장, 정치범수용소 해체운동과 오길남 박사 가족 '통영의 딸 구출운동'을 펼쳤으며, 황장엽 방미 수행단으로 동행했고, 유엔인권이사회에 NGO 활동가 자격으로 사이드이벤트를 여는 등 북한 김일성 3대의 반인도범죄와 전쟁범죄 규정을 위해 일했다. 신앙인으로서의 면모도 이 책의 저변을 흐른다. 잠시 김 대표에게 신앙이 없었다면 어떠했을까 생각해보면, 아마도 그녀는 주사파의 주요 인물로 자리잡았을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안 된 것은 하나님이 그녀를 사로잡고 있었기 때문에 반근대 세력들을 견제하는 데 지금까지 쓰임받은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필독서"와 "절규"의 사이에서 책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한 독자는 "저자 김미영 선생의 그동안의 아픔이 무엇인지, 절규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녀의 소박하지만 거창한 인생목적이 무엇인지 가슴으로 알게 해 주었다"며 "이 책은 사회과학 평론도 아니요, 문학작품도 아니요, 단순한 저널리스트의 취재수첩도 아니지만, 그 울림의 강도에 있어 일반 서적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게 크다"고 평했다. 또 다른 독자는 "부정선거와 법치 파괴를 통해 3권분립 헌정질서를 무너뜨리고 있으며, 경제노동악법 제정을 통해 산업기반 파괴와 국유화를 진행시키는 현실을 이 책이 홍콩이나 베네수엘라행 급행열차를 탄 느낌으로 그려냈다"며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반드시 일독을 권한다"고 밝혔다. 서점 구매 리뷰에서도 "작금의 시대에 꼭 읽어야 할 필독서"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한편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한 보수 기독교 논자는 "국민 대다수는 이 책을 읽어도 별 감흥이 없을 듯싶다. 이유는 그들은 공산주의를 포함한 좌익사상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라며 이념적 문맹이 이 책의 경고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이 시대에 이 책이 갖는 의미 〈숨은민국〉은 특정 진영의 주장을 담은 이념서로만 읽혀서는 안 된다. 이 책의 진정한 의미는 다른 곳에 있다. 공산주의 세력의 100년 권력 투쟁, 북한이라는 상존하는 적의 존재, 남한과 해외에까지 뻗은 공작망, 반체제 지식인에 대한 조직적 포섭, 통혁당과 민혁당의 성격 차이, 운동권 정치세력의 분화와 변신, 그리고 제도 정당의 실종까지를 하나의 체계적 세계관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단순한 회고록이나 고발서가 아니다. 건국 이후 대한민국이 한 번도 정면으로 대답하지 못한 질문, 즉 "이 나라 안에 이 나라를 부정하는 또 하나의 나라가 있는가"라는 물음에 김미영은 자신의 평생을 걸고 답한다.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이 질문 자체를 외면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분단 80년, 건국 78년이 된 대한민국이 스스로의 정체성과 생존을 진지하게 묻기 시작해야 할 때, 이 책은 그 불편한 성찰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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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15
  • 팍스 차이나(Pax Sinica)의 야망과 문명의 균열
    미국은 팍스 차이나를 결코 허락하지 않는다. AI 이미지 역사에서 강대국은 2인자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미국을 제치려는 야망은 ‘일대일로’ 전략을 통해 진행되고 있다. 중국의 ‘夢’이 세계를 제패할 것인가? 미국은 베네수엘라 마두로 체포와 이란의 전쟁을 통해 중국에게 경고장을 날렸다. 2인자를 용납할 수 없다는 경고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팍스 아메리카를 유지하려는 전략만은 아닐 것으로 보이다. 본지는 중동(이란 루트와 '저항의 축' 지원 배후), 아프리카(채무의 덫과 인프라 식민지 — 아이러니하게도 K-방산의 진출로가 된 역설), 유럽(일대일로 경제 침투 + 이슬람 인구학적 팽창 + 문화막시즘의 3중 포위 — 문 닫은 교회가 이슬람 사원으로 팔리는 유럽의 현실 The Korea Daily), 동남아(인도네시아 채무 함정 실례), 남미(베네수엘라·멕시코). 그리고 트럼프 반격의 효과와 한계, 기독교 문명의 내부 붕괴 문제를 담는 기획기사를 준비했다. <편집자 주> 서론: 세계를 재편하는 조용한 전쟁 2013년 시진핑 국가주석이 카자흐스탄에서 처음 밝힌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은 단순한 인프라 투자 계획이 아니었다. 그것은 21세기 팍스 차이나(Pax Sinica), 즉 중국 주도의 새로운 세계 질서를 구축하려는 100년 대전략의 출발 신호였다. 아프리카의 항구, 중동의 석유 루트, 유럽의 수도 한복판, 동남아의 철도, 남미의 광산까지 — 중국의 붉은 자본은 이미 지구의 혈관을 장악해 들어갔다. 그러나 이 전략의 더 깊은 차원에는 경제적 침투를 넘어선 문명의 교체가 자리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의 유물론적 세계관과 전체주의 통치 모델이 자유민주주의를 대체하는 것, 그리고 기독교 문명이 세속주의·이슬람·문화마르크시즘의 연합에 의해 무너지는 것이 이 대전략의 핵심 시나리오다. 아산정책연구원의 2026년 이슈브리프는 "강대국 일방주의와 예외주의가 횡행하며, 기존 국제질서를 규정짓던 정치·경제적 레짐들이 약화됐다"고 진단한다. 세계는 지금 무질서 속의 체제 전환기에 서 있다. "일대일로는 인프라 사업이 아니다. 그것은 중화 세계질서 재건을 위한 100년 전략이다" Ⅰ. 일대일로의 전 지구적 판도: 5개 전선의 실체 1) 제1전선— 중동: 이란과 저항의 축 일대일로의 지정학적 핵심은 이란이다. 이란은 아시아와 유럽, 남반구와 북반구를 연결하는 최대 규모의 국제 수송 회랑이자, 중국의 에너지 안보를 떠받치는 전략 거점이다. 중국은 이란과2021년25년 포괄 협력 협정을 체결하고, 석유·가스 개발에서 인프라, 군사 협력까지 전방위 연대를 구축했다. 이란이 하마스·헤즈볼라 등 이른바 「저항의 축」을 지원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 중·이란 경제 동맹이 자리한다. 그러나 2026년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군사 공격으로 이 구도에 균열이 생겼다. 러시아 분석매체 <프라우다>의 보도에 따르면 "이란 정부가 무너진다면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란을 잃으면 중국은 유라시아 대륙 지배의 핵심 고리를 잃는 셈이다. 현재 중동 지역은 미국-이스라엘-사우디 안보구조가 형성되는 계기가 마련되어 무질서에서 벗어나고 있으나, 불안정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2) 제2전선— 아프리카: 채무의 덫과 인프라 식민지 아프리카는 중국 일대일로의 최대 수혜지이자 최대 피해지다. 중국은 수백억 달러를 투입해 아프리카 주요국에 고속철도, 대형 항구, 고속도로를 건설했다. 케냐는 수도 나이로비와 항구도시 몸바사를 연결하는 고속철도 건설에 필요한 자금 90%를 중국에서 조달했으나, 현재 케냐의 총 공공부채는 GDP의 67%인 757억 달러까지 불어났고 중국은 세계은행에 이어 케냐 최대 채권국이 됐다. 앙골라의 대중국 채무는 190억 달러에 달한다. 이집트는 중국 자본으로 서울보다 큰 신행정수도(700㎢)를 건설 중인데, 중국의 세계 최대 국방부 청사를 본뜬 이집트 국방부 청사,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이슬람 사원 등이 여기 포함된다. 수에즈 운하의 통제권이 중국에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22년 아프리카 15개국 여론조사에서 영향력 및 긍정 평가 면에서 중국이 미국을 추월했다는 사실은, 아프리카에서의 소프트파워 전쟁도 중국이 앞서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역설도 존재한다. 중국이 수십조 원을 들여 닦아놓은 아프리카의 도로와 항구가 이제 한국의 K2 흑표 전차가 달리는 무대가 되고 있다. 모로코 정부가 K2 전차 400대 도입을 검토하는 배경에는, 중국이 깔아놓은 고하중 인프라가 한국 중무기 체계의 진출 가능성을 열어줬다는 얄궂은 나비효과가 있다. 지정학은 때로 아이러니로 말한다. 중국의 ‘夢’과 미국과의 패권 경쟁은 단순한 1위 싸움이기 보다 자유민주국가의 붕괴와 맞물려있다. AI이지미 제작 3) 제3전선 — 유럽: 두 갈래 침투, 일대일로와 이슬람 유럽은 두 방향에서 동시에 포위되고 있다. 하나는 중국의 경제적 침투이고, 다른 하나는 이슬람의 인구학적 팽창이다. 이탈리아는 2019년 G7 국가 중 유일하게 일대일로에 서명했다(2023년 탈퇴). 중국은 베네치아를 포함한 이탈리아 전역에서 상업 부동산을 잠식했고, 독일의 핵심 제조업체들을 인수했다. 2016년 산업용 로봇 분야 세계 최강 쿠카(KUKA)가 중국 자본에 넘어간 것이 그 상징적 사건이다. 이를 계기로 독일은 첨단기술 기업에 대한 외국 자본 인수 심사를 강화하는 법을 만들었다. 그러나 더 심각한 위협은 문화의 내부 붕괴다. 유럽에서는 이민과 다문화주의가 기독교 문명의 정체성을 무너뜨리고 있다. 프랑스 전체 인구의 10% 내외가 무슬림이다. 영국에서는 해마다 220개의 교회가 폐쇄되는 반면 110개만 새로 세워지고, 문을 닫은 교회의 상당수가 이슬람 사원으로 팔리고 있다. 독일은 지난 10년간 515개의 가톨릭교회가 공식 폐쇄됐고, 네덜란드에서는 향후 4년 내 700곳 이상의 개신교회가 사라질 전망이다. 카메룬 맘페 교구의 앤드류 은키 대주교는 "유럽의 교회가 잠들었기 때문에 유럽이 이슬람화되고 있다. 역사를 보면 교회가 복음과 멀어진 곳에 이슬람이 기회를 노리고 들어왔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2025 국가안보전략(NSS)조차 "유럽은 이민과 다문화주의로 붕괴되고 있는 문명적 쇠퇴지역"으로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교회가 잠들면 이슬람이 들어온다. 유럽이 그 생생한 증거다" — 아프리카 대주교의 경고 4) 제4전선 — 동남아: 채무의 덫과 반중 감정의 확산 동남아시아는 중국 일대일로의 '쇼윈도'이자 균열의 진원지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반둥 고속철도는 동남아 최초의 고속철도로 홍보됐지만, 실제 이용객은 예상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고속철도 연간 매출이 약1,500억 원인데 중국에 갚아야 할 이자만 매년 1,700억 원에 달해, 2026년 2월 인도네시아 정부는 결국 국가 예산을 투입해 중국 개발은행 대출금을 갚기로 결정했다. 당초 "국민 세금 없이 민간 자본(B2B)으로만 하겠다"던 약속은 산산조각이 났다. 내부에서 "중국의 채무의 덫에 제대로 걸렸다"는 비판이 거세다. 필리핀은 두테르테 정부 시절 중국과 대규모 일대일로 협력을 맺었지만, 남중국해 분쟁이 격화되면서 친미 노선으로 선회했고, 일대일로 사업들을 재검토하고 있다. 미얀마는 쿠데타 이후 고립 속에서 중국 의존도가 더욱 심화됐다. 라오스는 중국-라오스 철도 완공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GDP가 21% 증가했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지만, 국가 부채가 GDP의 100%를 돌파하며 사실상 중국의 경제적 속국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동시에 제기된다. 5) 제5전선 — 남미: 베네수엘라와 자원 패권 남미에서 중국의 전략적 베이스캠프는 베네수엘라였다. 마두로 정권에 수십억 달러를 대출해 주고, 원유로 상환받는 구조로 중국은 베네수엘라의 석유 생산을 사실상 지배했다. 멕시코에서는 중국 자본이 상권과 건물을 잠식하고, 친중 성향의 정부와 결탁해 현지 소상공인을 고사시키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브라질·아르헨티나·칠레의 광산 자원 역시 중국 국유기업들의 주요 투자 대상이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적극 개입이 이 전선에서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베네수엘라에 대한 마두로 체포 압박과 군사·경제 제재는 중국의 서반구 진출에 실질적 타격을 줬다. 이로 인해 남미에서 중국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있으나, 브라질·아르헨티나 등 좌파 정부와의 관계는 여전히 긴밀하다. Ⅱ. 문화 막르크시시즘과 이슬람: 서구 문명 내부 붕괴의 두 엔진 일대일로가 '외부로부터의 침투'라면, 문화마르크시즘(Cultural Marxism)과 이슬람주의는 '내부로부터의 붕괴'를 주도하는 두 엔진이다. 이 두 세력은 표면적으로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자유민주주의와 기독교 문명을 해체한다는 점에서 구조적으로 공조한다. 문화 마르크시즘은 1960년대 프랑크푸르트학파에서 발원해, 전통 가족·종교·도덕·국가 정체성을 해체하는 이념으로 서구 교육·미디어·문화 전반에 침투했다. 동성애 이념, 젠더 유동성, 낙태 권리, 역사 왜곡, 탈식민주의 담론 등은 모두 이 흐름의 산물이다. 유럽에서는 이 흐름이 기독교 설교를 '혐오 발언'으로 규제하고, 전통 가족 개념을 '차별'로 낙인찍는 법적 환경을 만들어냈다. 서유럽 기독교인들 중 대부분은 명목상 기독교인에 불과하다. 영국의 경우 인구의 약 70%가 문화적·역사적 이유로 기독교인이라고 밝히지만, 정기적으로 교회에 출석하는 이는 7%에 불과하다. 이탈리아·오스트리아·포르투갈·아일랜드에서는 80% 이상이 기독교인이라고 답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동성결혼과 임신중절에도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이 문화마크르시즘이 만들어낸 '탈기독교 기독교인'의 초상이다. 이슬람은 이 공백으로 파고든다. 유럽의 이슬람 인구는 프랑스에서만 약 600만 명(전체 인구의 10%)에 달하고, 영국 400만 명, 독일 50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가 2010년대 이후 반복되면서 유럽의 기독교는 "문명 간 충돌"의 전면에 불가피하게 서게 됐다. 유럽 극우 정당들이 기독교를 이민자·세속주의에 맞선 '문화적 방패'로 활용하는 것은 이 맥락에서 나온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한 신앙 부흥이 아니라 정치적 정체성 전쟁이다. "교회가 비어가는 속도만큼 유럽은 포스트-기독교 문명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2기는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자처하는 전략을 가지고 중국과 보이지 않는 전쟁을 하고 있다 Ⅲ. 미국의 반격: 효과와 한계 트럼프2기 행정부는 이 흐름을 차단하려는 가장 적극적 행위자로 등장했다. 베네수엘라 마두로 체포 압박, 이란 군사 공격, 전 세계 상호관세 부과, NATO 동맹국에 대한 방위비 증액 압박 등 일련의 조치들은 중국-이란-베네수엘라 삼각 축을 해체하려는 전략적 계산에서 나온 것이다. 특히 이란 공격은 일대일로의 핵심 육로 통로를 차단하려는 의도를 내포한다. 서반구에서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중국의 남미 입지는 상대적으로 약화됐고, 동맹국들의 중국 의존 탈피도 가속화되고 있다. 그러나 역설도 있다. 트럼프의 일방주의는 전통 동맹국인 유럽과의 관계를 약화시키고, 개도국들에게 "미국보다 중국이 더 믿을 만한 파트너"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 2025년 중국은 글로벌 사우스에서 잇따라 무역협정을 체결하며 이 틈새를 파고들었다. 또한 트럼프의 상호관세는 2026년 2월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위법 판결을 받아 무효화됐다. 이로 인해 대중국 협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설령 관세 압박이 지속된다 하더라도, 중국은 유라시아·아세안·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에서 일대일로 전략을 계속 확대하며 미국의 압박을 분산시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미국의 반격은 필요하고 일정 부분 효과적이지만 충분하지 않다. 체제 경쟁에서의 승리는 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신뢰, 가치, 그리고 문명의 내적 활력이 함께해야 한다. Ⅳ. 결론: 문명 방파제는 어디에 세워지는가 팍스 차이나의 야망은 경제·외교·문화·정치·이념의 전방위 침투를 통해 전진하고 있다. 그 최종 표적은 자유민주주의이며, 더 깊은 곳에서는 기독교 문명이다. 일대일로는 경제 네트워크처럼 보이지만, 그 핵심은 중국 중심의 문명 패러다임으로 세계를 재편하는 것이다. 이슬람주의와 문화마르크시즘은 서구 내부에서 기독교 문명을 해체하는 협력자 역할을 한다. 중국공산당이 이 두 세력을 의식적으로 활용하는지의 여부와 별개로, 결과론적으로 이들의 목표는 수렴한다. 역사는 반복된다. 5세기 서로마 제국은 외부의 침략보다 내부의 도덕적 해이와 정체성 상실로 무너졌다. 오늘의 서방 문명도 동일한 경로를 걷고 있다. 교회가 비어가고, 가정이 해체되고, 진리의 개념이 해체되는 곳에, 권위주의와 전체주의가 새로운 질서로 들어온다. 이스라엘·미국·한국은 그나마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최전선에 서 있는 나라들이다. 이 세 나라가 각자의 내부 균열을 치유하지 못한다면, 팍스 차이나의 파도를 막을 방파제는 없다. 그 방파제는 군사력도, 경제력도 아니다. 참된 방파제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 진리에 기반한 공동체, 그리고 자유와 생명의 가치를 목숨으로 지키려는 시민들의 각성이다. 한국 교회와 사회가 이 시대를 읽는 눈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팍스 차이나의 파도를 막는 방파제는 군사력이 아니다. 진리와 공동체 안에 세워진다"
    • 이슈와 진단
    • 시사 진단
    2026-04-14
  • 한국 교회 목회자 절반 이상, 이미 AI로 설교 준비한다
    챗GPT가 세상에 등장한 지 불과 2년 반 만에, 한국 교회 강단의 풍경이 조용히 바뀌고 있다. 이제 목회자 두 명 중 한 명 이상은 설교를 준비하면서 인공지능(AI)의 도움을 받는다. 불과 2년 전만 해도AI로 설교를 준비한다는 목회자는 열 명 중 두 명도 채 되지 않았다. 목회 현장 깊숙이 파고든 AI가 한국 교회에 새로운 기회와 심각한 도전을 동시에 던지고 있다. 목회데이터연구소와 희망친구 기아대책이 2025년 5월, 전국 담임목사 500명과 개신교 성도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교회 트렌드2026」 조사(AI 목회 코파일럿)에서 이 같은 실태가 구체적인 수치로 확인됐다. AI가 목회 현장에서 단순한 유행을 넘어 실질적인 사역 도구로 자리 잡아가는 과정과, 그 이면에 한국 교회가 직면한 신학적·영성적 과제를 짚어본다. 2년 새3배 이상 급증… "목사님도AI 씁니다" 이번 조사에서 가장 주목받는 수치는 단연 목회/설교 분야의 AI 사용률이다. 2023년 3월 17%에 불과했던 수치가 2025년 5월 58%로 껑충 뛰었다. 3배 이상의 증가율이다. 목회자의 전반적인 AI 사용률 역시 같은 기간 41%에서 80%로 두 배 가까이 높아졌다. AI를 아예 쓰지 않는 목회자가 이제는 다섯 명 중 한 명꼴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이는 한국 사회 전반의 AI 확산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조사전문기관 컨슈머인사이트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국내18~65세 성인 가운데 생성형 AI를 사용해본 경험이 있는 비율은 75%에 달하며, 한 달에 한 번 이상 사용하는 활성 이용자 비중도 61%에 육박한다. 교회가 사회 흐름의 담장 밖에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AI 활용 범위도 넓어졌다. 2023년에는 설교 또는 강의 준비를 위한 자료 획득에 집중됐던 반면(95%), 2025년 조사에서는 성경 공부 준비(+8%p), 교회 행사 기획(+6%p), 기도문 생성(+5%p) 등 콘텐츠 생성과 기획 전반으로 활용 영역이 확대됐다. AI가 단순 검색 도구에서 실질적인 사역 보조 수단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만족은 절반, 5점 만점에3.5점… "아직은 아쉽다" 그러나 현장의 만족도는 사용률만큼 높지 않다. AI를 목회/설교에 활용해본 목회자들의 55%가 만족한다고 답했지만, 5점 만점 기준 평균은 3.5점에 그쳤다. 10명 중 1명(11%)은 불만족을 표했다. 이는 AI가 설교 준비의 효율성을 높여주지만, 목회자의 고유한 신학적·목양적 필요를 아직 충분히 채우지 못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설교의 어떤 부분에 AI를 쓰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목회자와 성도 사이에 뚜렷한 온도 차가 드러났다. 설교 예화나 자료 수집에 대해서는 목회자의 93%가 적절하다고 답한 반면, 성도는 66%에 그쳤다. 설교문 주제 선정에서도 목회자(68%)가 성도(44%)보다 24%p 높은 긍정률을 보였다. 가장 첨예한 갈등 지점은 설교문 작성이다. 목회자의 44%만이 AI로 설교문을 직접 작성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답했고, 성도는 65%가 적절하지 않다는 반대 의견을 보였다. 성도들에게 설교문은 여전히 목회자의 영혼과 묵상이 담긴 고유한 산물이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게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특이한 점은 연령별 차이다. 49세 이하 목회자는 58%가 설교문AI 작성을 적절하다고 봤지만, 60세 이상은 46%로 낮아졌다. 젊은 목회자일수록 AI에 더 열려 있다. 찬성vs 반대, 핵심 논거는"효율" 대"묵상" AI를 설교문 작성에 활용하는 것에 찬성하는 목회자들이 드는 이유는 명확하다. 참고 성경구절이나 문헌을 찾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서라는 응답이 60%로 압도적 1위였고,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설교를 준비할 수 있어서(30%)가 뒤를 이었다. AI를 사역의 속도와 질을 높이는 코파일럿으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반면 반대 측의 논거는 전혀 다른 차원에 있다. 설교 준비에 필요한 개인적 묵상과 연구가 줄어들어서라는 이유가 65%로 단연 1위였다. 설교자의 생각과 노력이 들어가지 않아서(29%)가 그 뒤를 이었다. AI가 주는 편의가 목회자의 영적 사고력과 신학적 치열함을 무디게 할 수 있다는 우려다. 설교를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닌 영적 산물로 보는 한국 교회의 전통적 설교관이 AI와 충돌하는 지점이다. 목회자44% "AI, 설교 준비의 필수 도구 될 것" 향후 전망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목회자의 52%는 AI가 설교 준비에서 제한적인 역할에 그칠 것이라는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44%는 필수적인 도구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절반에 가까운 목회자가 AI를 일시적 유행이 아닌, 미래 사역 환경의 핵심 인프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이미 AI를 목회에 써본 목회자의 63%는 앞으로 AI를 더 많이 사용할 것 같다고 답했다. 아직 목회에는 도입하지 않았지만 AI 사용 경험이 있는 목회자들 사이에서도 향후 목회 활용 의향이 63%에 달했다. 현장 적용을 관망해온 목회자들이 실제 도입을 본격 검토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목회자81%, "성도 맞춤형AI 신앙 서비스 도입하고 싶다" AI를 설교 준비 도구로 쓰는 것을 넘어, 성도를 위한 신앙 서비스에 AI를 도입하고자 하는 열망도 높았다. 개인의 신앙 수준과 영적 필요에 맞춰 설교, 성경공부, 묵상 자료를 제공하는 AI 맞춤형 신앙 서비스에 대해 목회자의 81%가 활용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성도의 61%도 긍정적 반응을 보였지만, 목회자의 열망이 20%p나 더 높았다. 성도들이 가장 원하는 AI 신앙 서비스 1위는 상황에 맞춘 묵상과 찬양 콘텐츠 제공(34%)이었으며, 신앙 상태에 따른 성경공부 안내(28%), 나에게 맞는 설교 추천(22%) 순이었다. AI를 일방적 정보 제공자가 아니라, 자신의 영적 상황에 반응하는 맞춤형 영적 동반자로 기대하는 성도들의 심리가 반영됐다. 교회 전산화 분야에서는 목회자와 성도 모두 교회 행정 전산화(각각 64%, 61%)와 회계 및 예산 관리를AI 도입 최우선 과제로 꼽아, 핵심 사역 외 행정 부담을 줄이는 데AI가 먼저 쓰이길 기대했다. 도구는 왔다, 지혜가 남았다 이번 조사가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함의는 수치 이면에 있다. AI 사용률의 폭발적 증가 뒤에는 목회자들이 조용히 씨름하는 질문이 있다. 기술이 가져오는 편의성이 영성의 깊이를 대체할 수 있는가. AI가 생산해내는 매끄러운 설교문이 목회자의 치열한 신학적 묵상과 기도에서 우러나온 말씀을 대신할 수 있는가. AI 시대 교회의 과제는 기술을 거부하거나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지혜롭게 다루는 영성과 안목을 갖추는 것이다. 연구소 측은AI 도입의 목표는 확보된 시간을 성도를 향한 돌봄과 깊은 영적 묵상에 재투자하는 데 있어야 하며,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성도와의 교제, 심방, 기도라는 본질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전략을 세운 다음에야 전쟁을 할 수 있고, 참모가 많아야 승리할 수 있다는 잠언의 지혜가AI 시대에도 유효한 이유다(잠24:6).
    • 이슈와 진단
    • 이슈 진단
    2026-04-13
  • '극우 몰이와 극우 프레임'의 함정을 극복하라
    들어가며 : 낙인은 진리가 아니다 한국 사회와 교회 안에서 '극우'라는 단어가 무서운 속도로 퍼지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2024년 12·3 비상계엄 선포를 전후하여, 이를 지지하거나 옹호하는 목사와 성도들을 향해 이 단어가 집중 포화처럼 쏟아지고 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 교회개혁실천연대 등 교계의 이른바 진보 진영 단체들은 일부 목회자들을 향해 '극우 선동'이라 규정하고, 나아가 보수 성향의 일반 성도들과 교회를 향해서도 '극우'의 이름표를 붙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냉정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극우'는 과연 중립적이고 정확한 언어인가? 아니면 상대방의 입을 막고 교회 안에 분열을 조장하는 정치적 무기인가? 한 집단을 '극우'라 부르는 것이 '정의'와 '공의'를 실현하는 행위인가, 아니면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도덕으로 포장하는 선동인가? 본고는 이러한 물음들을 중심으로, 한국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극우 프레임' 씌우기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교회가 나아가야 할 건강한 방향을 모색한다. 1. '극우'라는 단어의 정치적 폭력성극우의 개념적 정의와 그 한계 학문적으로 '극우(extreme right / far-right)'는 단순히 보수적 입장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극우의 핵심적 특징으로는 초보수주의, 권위주의, 국수주의, 극단적·폭력적 반공주의, 에스닉 내셔널리즘, 극단적 반이민 정서 등이 꼽힌다. 무엇보다 극단(極端)이라는 말이 함의하듯, '폭력성'과 '반민주적 전체주의'가 극우 개념의 핵심에 놓여 있다. 히틀러의 나치즘이 극우를 대표한다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자명하다. 단순한 정치적 보수주의나 특정 지도자 지지가 곧 극우를 뜻하지 않는다. 실제로 목회데이터연구소와 문화선교연구원, 한반도평화연구원이 2025년 공동 발표한 '한국 개신교의 정치 문화 지형 조사'에 따르면, 서부지법 습격 사태를 '국민저항권'이라 정당화한 응답자를 극우로 분류했을 때, 한국교회 내 극우 비율은 교인 13.5%, 목회자 12.9%에 그쳤다. 즉 한국교회 내 다수는 극우와 거리가 먼 보수 내지 중도층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극우 교회', '극우 목사'라는 표현이 언론과 진보 교계 단체들에 의해 마치 한국교회 전체를 규정하는 언어인 양 사용되고 있다. 낙인 이론으로 보는 '극우' 프레임 사회학자 베커(Becker, 1963)의 '라벨링 이론(labeling theory)'은 이 문제를 정확히 설명해 준다. 보수적 입장을 '극우'로 규정하는 언어 전략은 단순한 수사를 넘어 '정치적 라벨링의 기능'을 수행한다. 한 번 '극우'라는 라벨이 붙으면, 해당 인물이나 단체는 무슨 주장을 하든 편견과 혐오의 렌즈를 통해 해석되기 쉽다. 이처럼 라벨은 개별 주장의 내용이 아니라, '누가 말했는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게 만드는 효과를 유발하며, 결과적으로 정치적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위험이 있다. 심리학적으로도, '극우'라는 프레이밍은 상대 집단을 향한 도덕적 공황(moral panic)을 조성한다. 특정 집단이나 의견이 언론을 통해 '사회적 위협'으로 묘사될 때, 대중은 이를 과잉 반응하며 공포와 배제의 감정을 공유하게 된다. 시장경제를 옹호하거나, 안보를 중시하고, 전통적 가치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 자동으로 '반민주', '혐오적', '위험한 극단주의'로 포장될 때, 이는 단순한 정치적 차이를 넘어 사람의 정체성 자체를 파괴하는 폭력이 된다. 2. 한국교회 안에서 '극우 몰이'가 작동하는 방식비판에서 낙인찍기로의 전환 12·3 계엄 이후 한국교회 진보 진영의 일부는 정당한 비판의 영역을 넘어섰다. 기윤실과 교회개혁실천연대 등이 주도한 기자회견에서 이들은 보수 성향 목회자들을 '거짓과 불법을 추종하는 극우 정치권'으로 규정하고, 한국교회 전체가 이 범주에 포함된 것처럼 몰아갔다. 물론 계엄을 법적·헌법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당연히 허용되는 행위다. 그러나 '계엄이 불법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탄핵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신앙적·정치적 소신을 가진 성도와 목사를 '극우'로 낙인찍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더욱이 진보 진영은 스스로를 '정의'와 '공의'의 대변자로 자리매김하면서, 그들과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도덕적으로 열등한 '극우'로 배치하는 이항 대립 구조를 교회 안에 만들어냈다. 이는 신앙의 언어를 빌린 정치적 선동이다. 기윤실 등이 성명에서 계속 사용하는 '공의', '회개', '내란 부역'이라는 표현들은 신학적 언어처럼 들리지만, 사실상 그들의 정치적 입장을 하나님의 뜻으로 동일시하는 위험한 신학적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 교회 내 분열을 '정의'로 포장하는 논리의 구조 교회개혁실천연대와 기윤실 등의 성명 패턴을 들여다보면 일정한 논리 구조가 드러난다. 첫째, 자신들의 정치적 판단(계엄=내란, 지지=부역)을 성경적 진리로 선언한다. 둘째, 이 진리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을 '극우', '거짓 선지자', '내란 선동자'로 규정한다. 셋째, 이러한 규정을 근거로 교회 안에서의 단절과 배제를 '예언자적 사명'으로 정당화한다. 이 논리는 겉으로는 개혁의 언어를 사용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교회를 정치적으로 분열시키는 선동의 구조다. 문화선교연구원 백광훈 원장의 분석은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그는 극우적 입장을 과잉 조명하면 중도층도 극우 견해에 동조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는 역설이다. 극우를 문제삼겠다는 진보 진영의 과잉 프레이밍이 오히려 극우적 성향을 강화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보수 개신교인이 정치에 참여할 때는 기독교적 정체성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하는 반면, 진보 개신교인이 정치에 참여할 때는 기독교적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로 인해 '보수 교회=극우'라는 편향된 인상이 굳어지게 된다. 3. 선동적 극우 프레임이 교회에 미치는 해악신앙 공동체의 해체와 언어 폭력 교회 안에서 '극우'라는 언어가 무기처럼 사용될 때, 그 첫 번째 피해는 신앙 공동체의 신뢰다. 세대를 이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함께 예배하고, 섬기며, 기도해 온 공동체가 정치적 견해 차이로 인해 '극우'와 '정의파'로 나뉠 때, 교회는 더 이상 복음 위에 세워진 하나님의 가족이 아니라 이념 대립의 전장이 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찢는 죄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낙인찍기는 언어 폭력의 성격을 띤다.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하거나 계엄의 합법성에 다른 견해를 가진 성도를 '내란 부역자'라 부르는 것은, 그 사람의 다년간의 신앙 여정과 인격 전체를 부정하는 행위다. 한국교회의 역사와 전통, 보수 신학의 토양 위에서 세워진 수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하루아침에 '극우'로 규정되는 것은, 그 자체로 교회 공동체를 향한 심각한 영적 폭력이다. 복음의 공간을 정치로 잠식하는 위험 교회는 본질적으로 정치 집단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6장 12절에서 이렇게 가르쳤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이데올로기나 보수·진보라는 정치적 진영 논리의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규정한다면, 복음은 물론이고 한 영혼의 소중한 가치까지 훼손된다. 예수님도, 사도 바울도, 베드로도 보수주의자이거나 진보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들이 추구했던 이념은 오직 하나님의 나라였다. 한국교회 안에서 '극우' 프레임이 활발히 사용될수록, 복음이 울려야 할 공간을 정치 담론이 잠식하게 된다. 기윤실이나 교회개혁실천연대가 성명을 내고 기자회견을 여는 공간이 원래는 복음을 전하고, 고아와 과부를 돕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자리여야 한다. 정치적 입장을 '교회의 공의'로 포장할 때, 교회는 세상의 다른 정치 세력과 다를 바가 없어진다. 한국교회 대외 신뢰도의 추가 하락 아이러니하게도 '극우' 프레임을 남발하는 쪽이 한국교회의 외부 신뢰도 하락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 교계 내부에서 서로를 '극우'라 부르는 모습은 사회 일반에게 한국교회가 이념 대결로 분열된 집단이라는 인상을 준다. 복음주의 교계 지도자들 스스로가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교회가 거짓과 불법을 추종하는 극우 집단으로 오인받고 있다'고 경고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 오인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교회 밖에서 보는 시선은 '정의파'와 '극우파'를 구별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교회는 그저 정치 싸움을 하는 집단으로 보일 뿐이다. 4. 비판과 낙인의 경계를 어디에 그어야 하는가정당한 비판과 선동적 낙인의 차이 물론 한국교회 안에 실제로 성경적으로 비판받아야 할 행태가 있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일부 목회자들이 공개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설교단에서 쏟아내거나, 신도들을 정치 집회에 동원하거나, 폭력적 행동을 미화하는 발언을 했다면, 이는 교회 내에서 마땅히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한 비판은 정당하고 필요하다. 그러나 비판과 낙인찍기는 엄연히 다르다. 비판은 구체적인 행동과 발언을 대상으로 하고, 당사자가 개선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낙인찍기는 정체성 전체를 타겟으로 삼아 배제와 혐오의 언어로 몰아간다. 특정 목사의 발언이 잘못되었다면 그 발언을 비판해야지, '극우 목사', '극우 교회'라고 낙인찍어 그 사람과 그 공동체 전체를 사회적으로 매장하려는 시도는 기독교적 가치와 배치된다. 성경은 우리에게 죄를 책망하되 소망을 가지고 온유한 영으로 회복시키라고 가르친다(갈 6:1). 정치적 다양성을 품을 수 있는 교회의 역량 성경은 정치 제도나 정당을 지정해 주지 않는다. 로마서 13장에서 사도 바울이 권세에 순종하라 했을 때, 그가 의도한 것은 특정 정권이나 정책을 무조건 지지하라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 아래에서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악을 억제하는 기능으로서의 국가를 존중하라는 것이었다. 그 말씀으로부터 '윤석열 지지'를 도출하거나 '윤석열 반대'를 도출하는 것은 모두 성경 본문의 과도한 정치화다. 한국교회는 역사적으로도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을 품어왔다. 반공주의의 토양 위에서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성도가 있는가 하면,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그리스도인도 있었다. 이 다양성은 교회의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복음의 보편성을 보여주는 증거다. 복음은 좌도 우도 아니다. 복음은 정치를 초월하여 모든 이념과 제도에 대해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한다. 교회가 이 보편성을 잃고 특정 정치 진영의 도구가 될 때, 그것이 진보든 보수든, 교회는 교회로서의 본질을 상실한다. 5. 해결 방안 : 프레임을 넘어 복음으로첫째, 언어의 회복 — '극우' 대신 구체적 기술로 교계 안에서 '극우'라는 단어의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만약 비판이 필요하다면, 극우라는 일반화된 낙인 대신 구체적 행동과 발언을 기술하는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전광훈 목사의 이러이러한 발언은 폭력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 '손현보 목사의 설교 도중 신도 폄훼 발언은 사목자로서 부적절하다'는 방식의 구체적 비판은 정당하다. 그러나 이것을 '극우 목사들'이라는 통칭으로 일반화하는 것은 언어의 부정직함이다. 둘째, 교회 내 정치 다양성의 존중과 복음적 원칙의 재확인 한국교회는 정치적으로 다양한 성도들이 복음 위에서 함께하는 공동체임을 재확인해야 한다.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고 해서 같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형제자매를 교회 밖으로 밀어내는 행위는 교회론적으로 심각한 문제다. 교회는 구원받은 죄인들의 공동체이며, 그 안에는 보수도 진보도, 탄핵 찬성도 반대도 있을 수 있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은 그들 모두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삶을 가르치는 것이다. 정치 판단이 아니라 복음이 교회의 통일성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 셋째, 교계 기관의 정치적 중립성 원칙 수립 기윤실, 교회개혁실천연대 등 교계 기관들은 특정 정치 사안에 대해 단정적 성명을 내기 전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 성명의 언어가 신앙적 권위를 빌려 정치적 입장을 관철하려는 시도로 읽힐 때, 그 기관의 공신력은 오히려 추락한다. 네덜란드 수상이자 신학자였던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가 가르쳤듯이,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이 드러나는 것은 교회가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때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왕권 아래 살아갈 때다. 교계 기관은 정치 운동의 외곽 기지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도구여야 한다. 넷째, 이성적 토론과 사실 기반 비판의 문화 형성 정치적 입장은 다를 수 있지만, 그 차이를 감정적 낙인이나 윤리적 비난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 토론과 사실 기반의 비판으로 풀어가는 성숙한 교회 문화를 형성해야 한다. 목회자들도 설교단에서 정치적 발언을 할 때 그것이 신앙 고백적 차원인지, 단순한 정치적 선호의 표현인지를 구분하고, 신중하게 언어를 선택해야 한다. 성도들도 다양한 견해를 가진 형제자매를 '극우' 혹은 '좌파 프락치'라고 몰아가는 진영 논리의 유혹을 물리쳐야 한다. 다섯째, 하나님 나라 시민으로서의 정체성 재정립 궁극적으로 한국교회가 극우 프레임의 악순환을 끊어내는 길은, 세상의 정치 논리보다 하나님 나라의 논리를 우선시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먼저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요, 그 다음이 대한민국의 시민이다. 우리의 일차적 정체성이 정치 진영이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임을 확인할 때, '극우' 혹은 '좌파'라는 세상의 레이블은 그 힘을 잃는다. 교회가 교회다워질 때, 세상의 정치 프레임은 교회 안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나가며 : 교회는 프레임이 아니라 복음으로 말해야 한다 한국교회 안에서 '극우 프레임'을 씌우는 선동적 움직임은 여러 차원에서 잘못된 접근이다. 그것은 개념적으로 부정확하고, 신학적으로 위험하며, 교회 공동체를 파괴하는 결과를 낳는다. 정당한 비판을 넘어 집단 낙인찍기로 향하는 순간, 그것은 복음이 아니라 선동이 된다. '정의'와 '공의'를 외치면서 형제자매를 배제하고, '교회 개혁'의 이름으로 교회를 분열시키는 것은 성경적 예언자 사역이 아니다. 한국교회에 지금 필요한 것은 이쪽 저쪽을 향한 정치적 성명이 아니다. 교회는 좌도 우도 아닌 오직 십자가의 복음 위에 서야 한다. 세상의 정치가 교회를 분열시키려 할 때, 교회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가 되어 그 분열에 저항해야 한다. 에베소서 4장 3절의 말씀대로,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것, 이것이 지금 한국교회가 걸어야 할 길이다. 극우 프레임을 넘어서는 힘은 더 강한 정치 언어에서 오지 않는다. 그것은 복음에서 온다. 교회가 다시 복음으로 말할 때, 세상의 모든 프레임은 무력해진다. 한국교회가 세상의 낙인찍기 방식을 교회 안으로 들여오는 유혹을 물리치고, 진리와 사랑 안에서 서로를 세워가는 공동체로 거듭나기를 촉구한다.
    • 길과생명연구소
    2026-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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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우석 평론가, 예장합동 소강석 목사 행보 강하게 비판
    조우석 뉴스스타운 주필이 최근 본인의 유튜브채널에서 소강석 목사의 문제를 제게하였다.영상캡처 중앙일보 기자 출신의 조우석 뉴스타운 주필이 최근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합동) 소강석 총회장의 공적 행보를 강하게 비판하는 내용의 영상을 공개해 주목을 받고 있다. 조 평론가는 소 목사가 보수 교단의 지도자로서 일관성 있는 행보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집중 거론했다. 코로나19 방역 국면에서의 태도 논란 조 평론가는 코로나19 확산 당시 소 목사가 정부 방역 지침에 협조하며 교회의 자성을 촉구하는 발언을 한 것을 문제 삼았다. 그는 이러한 태도가 당시 정권의 이른바 ‘정치 방역’ 기조에 편승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보수 교단의 수장이 교회의 입장을 충분히 변호하지 않고 오히려 사회적 비판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비판했다. 조 평론가는 또 소 목사가 일부 신앙 공동체의 신념을 ‘광적인 신앙’이라고 표현한 것을 두고, 이것이 교회 내 보수적 목소리를 스스로 낮추는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소 목사가 ‘좌우 이념에 매몰되지 않는 열린 교회론’을 표방하며 진보 성향 매체와 인터뷰를 가진 것도 보수 교단 지도자로서의 정체성과 괴리된 행동이라고 규정했다. 북한 교회 방문 이력과 대북 교류 활동 조 평론가는 소 목사가 2014년 북한 봉수교회를 방문하는 등 총 10여 차례 평양을 다녀온 공식 이력이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봉수교회가 북한 당국이 외부에 보여주기 위해 운영하는 이른바 ‘관제 교회’라는 점을 지적하며, 그곳에서 남북 공동 기도회를 여는 방식의 교류가 실질적인 종교의 자유 확대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조 평론가는 또 소 목사가 “통일은 곧 진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을 거론하며,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를 중시하는 보수 교단의 기조와 충돌할 수 있는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북한 체제의 실상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진행되는 대북 교류는 북한 정권에 명분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칼빈 신학 해석 논쟁 조우석 평론가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소강석 목사가 스스로 모순된 행보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영상캡처 비판의 배경과 한계 조 평론가는 이번 비판이 개인에 대한 감정적 공격이 아니라 한국 교회와 대한민국의 정체성 수호를 위한 문제 제기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교회가 사회적·정치적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를 지키는 보루로 서야 한다는 소신을 밝혔다. 다만 이번 비판은 조우석 평론가 개인의 시각에 근거한 것이며, 소강석 목사 측의 공식 입장이나 반론은 이 기사에서 별도로 확인되지 않았다. 향후 소 목사 측의 반론이 있으면 게재할 수 있으며, 소 목사측의 입장을 추가 취재해 보도할 예정이다. ※ 편집자 주: 본 기사는 조우석 평론가의 공개 방송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한 보도 기사입니다. 해당 방송에서 제기된 주장 중 일부는 객관적 근거가 충분히 제시되지 않은 의견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독자 여러분의 비판적 판단이 요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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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슈 진단
    2026-04-18
  • 기독교인 비율 반등…'불신'보다 무서운 '무관심'의 벽
    목회데이터연구소 제공 지속적인 탈종교화 흐름 속에서 마침내 반전의 신호가 감지됐다. 한국갤럽이 최근 공개한 '한국인의 종교 1983~2025'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2년과 2024년에 역대 최저치(37%)까지 떨어졌던 우리나라 종교 인구 비율이 2025년 40%를 회복하며 3년 만에 반등에 성공했다. 특히 기독교인 비율은 2024년부터 상승세로 돌아서 2025년 18%를 기록, 불교(16%)와 가톨릭(6%)을 제치고 3대 종교 중 선두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이번 조사는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7,647명을 대상으로 2025년 3월부터 11월까지 한국갤럽이 면접조사 방식으로 수행한 것으로, 95% 신뢰수준에서 표본오차는 ±1.1%p다. 2004년 이후 첫 반등…탈종교화의 '가파른 기세' 일단 저지 한국 사회의 종교 인구는 1983년 44%에서 출발해 2004년 54%로 정점을 찍은 뒤 줄곧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2013년 50%였던 비율은 10년 사이에 37%까지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2025년 조사에서는 전년 대비 3%포인트 상승한 40%를 기록하며 장기 하락세에 제동이 걸렸다. 무종교 인구는 여전히 60%로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2020년 이후 60%대 초반에서 정체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탈종교화의 속도가 눈에 띄게 둔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성별로는 10년 전(2015년)과 비교해 남성 종교인 비율이 41%에서 31%로 10%포인트 하락한 반면, 여성은 55%에서 49%로 6%포인트 떨어져 남성의 감소폭이 더 크게 나타났다. 연령별로는 전 연령대에서 8~12%포인트 하락했으며, 60세 이상만이 52%로 절반을 지켜낸 것으로 확인됐다. 청년층에서도 기독교 독보적 우위 이번 조사에서 주목할 만한 또 다른 지점은 청년층에서의 기독교 우위다. 40대 이하 연령층에서 기독교는 불교와 가톨릭을 크게 앞서고 있다. 19~29세 응답자 중 기독교인 비율은 14%로, 불교(4%)와 가톨릭(6%)을 훨씬 웃돈다. 30대에서도 기독교 16%에 비해 불교 6%, 가톨릭 7%로 격차가 뚜렷하다. 이는 기성세대에서 불교 세력이 강한 것과 달리, 젊은 세대로 갈수록 기독교가 종교적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반면 60세 이상에서는 불교(27%)가 기독교(18%)를 크게 앞서 세대 간 종교 지형의 뚜렷한 대비를 보여줬다. 성별로는 여성 기독교인 비율이 23%로 남성(13%)의 거의 두 배에 달했다. 목회데이터연구소 제공 신앙 실천 면에서도 기독교인의 경건 생활은 타 종교를 압도한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성경(경전)을 읽는다'는 응답에서 기독교인은 61%로 종교인 전체 평균(38%)을 크게 웃돌았다. 이는 가톨릭(45%)보다 16%포인트, 불교(6%)와 비교하면 무려 10배 이상 높은 수치다. '하루에 한 번 이상 기도한다'는 항목에서도 기독교인(43%)이 가톨릭(39%), 종교인 전체 평균(29%), 불교(7%)를 모두 앞섰다. 진짜 위기는 '이탈'이 아니라 '무경험'과 '무관심' 그러나 반등의 소식이 마냥 낙관적일 수만은 없다. 무종교인의 종교 인식을 들여다보면 더욱 근본적인 과제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우선 '과거에 종교를 믿은 적이 있다'는 무종교인의 비율이 2025년 22%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뒤집어 말하면, 현재 무종교인 중 78%가 평생 어떤 종교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순수 무종교인'이라는 뜻이다. 탈종교화가 단순한 신앙 이탈을 넘어 '종교 무경험'이 사회에 고착되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는 경고다. 과거 신앙 경험이 있는 무종교인 중에서는 기독교 출신이 51%로 가장 많았고, 불교(34%), 가톨릭(15%) 순이었다. 이는 타 종교에 비해 기독교에서 무종교로 이탈한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음을 보여주는 수치이기도 하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무종교인의 종교 호감도다. 무종교인 3명 중 2명(67%)은 '호감 가는 종교가 전혀 없다'고 답했다. 이 비율은 2004년 33%, 2014년 46%, 2021년 61%에서 지속적으로 상승해온 것으로, 종교 전반에 대한 사회적 거리감이 구조적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목회데이터연구소 제공 종교를 믿지 않는 이유로는 '관심이 없어서'가 52%로 가장 높았고, '정신적·시간적 여유가 없어서'(20%), '종교에 대한 불신과 실망'(13%)이 뒤를 이었다. 과거의 탈종교화가 종교에 대한 실망에서 비롯된 적극적 '이탈'이었다면, 이제는 종교를 삶의 선택지에서 아예 지워버린 '심리적 단절'의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무관심의 벽'을 넘는 것이 한국 교회의 새 과제 목회데이터연구소는 이번 조사 결과에 대해 이렇게 제언했다. 첫째, 반등의 신호를 발판 삼아 패배주의를 극복하고, 교회를 찾는 이들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정착시키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단순한 수적 증가를 목표로 하는 전도를 넘어, 새가족 정착과 양육 시스템을 보다 체계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 '무관심의 벽'을 넘기 위해 종교적 권위를 내려놓고 '일상의 접점'을 회복해야 한다. 공격적인 전도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시대, 교회는 종교적 의무를 강요하는 공간이 아니라 고단한 일상의 짐을 덜어주는 안식처이자 의미 있는 관계를 제공하는 공동체로서의 매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진단이다. 목회데이터연구소 제공 한편 초자연적 세계관에 관한 조사에서는 우리 국민의 57%가 '기적이 존재한다'고 응답해, 종교인 비율(40%)을 훨씬 웃도는 수치를 나타냈다. 이는 무종교인이라 하더라도 초월적 차원에 대한 내면의 갈망이 여전히 존재함을 시사하는 대목으로, 한국 교회가 복음 전도의 접점을 찾는 데 있어 새로운 가능성의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들이신 것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롬 15:7). 반등의 봄바람이 불기 시작한 한국 교회 앞에 놓인 과제는 분명하다. 문을 여는 것, 그리고 찾아오는 이를 진심으로 맞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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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17
  • 화제의 책/대한민국 안에 숨겨진 또 하나의 나라
    "22세기에도 대한민국은 살아 있을까." 도발적이다 못해 서늘한 이 질문 하나가 책의 표지를 뚫고 나온다. 2026년 1월, 세이지 출판사가 펴낸 김미영 VON뉴스 대표의 신작 〈숨은민국—주체사상파·부정선거·북한인권 그리고 마이 라이프〉는 출간과 동시에 보수 기독교 지식인 사회와 안보·이념 논쟁 진영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저자가 수십 년에 걸쳐 언론 현장과 북한인권 운동, 국제인권 무대에서 축적해 온 문제의식과 경험을 집대성한 이 책은, 단순한 이념 고발서도 정치 비평서도 아니다. 대한민국의 건국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직시된 적 없는 '보이지 않는 나라'의 실체를 추적한, 한국 현대사 최전선의 기록이다. 2024년 12월 3일이 촉발한 각성 이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오랜 잉태의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결정적 계기는 뚜렷하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2024년 12월 3일의 계엄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밝힌다. 그 사건을 통해 이 책의 주제를 공유할 독자들이 제법 있을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계엄 선포와 그 후폭풍으로 한국 사회가 격렬하게 요동치던 그 시점에, 저자는 비로소 자신이 평생 가슴에 품어 온 질문을 세상 앞에 내놓을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좌파와 우파, 보수와 진보라는 단순한 이분법으로는 더 이상 한국의 현실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확신이 '숨은민국'이라는 개념을 탄생시켰다. 저자가 이 책에서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위기의 뿌리를 "보이지 않게 작동해 온 또 하나의 나라", 즉 '숨은민국'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1945년 해방 이후 한반도는 38선을 경계로 남과 북으로 갈라졌지만, 저자의 시선에 따르면 분단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휴전선을 사이에 둔 물리적 분단과 더불어, 대한민국 내부에서는 수평이 아닌 수직의 분열, 다시 말해 '위의 나라'와 '아래로 숨은 나라'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숨은민국'과 '은국민'이란 무엇인가 〈숨은민국〉이 제시하는 개념적 틀은 독특하고 도전적이다. 1945년 38선으로 남북이 갈린 한반도는 6·25전쟁을 거쳐 1953년부터는 휴전선이라는 더 길고 넓은 경계선으로 갈렸다. 그러나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만 갈린 것이 아니었다. 대한민국도 다시 두 개의 나라로 갈렸다. 수평적이 아니라 수직적으로, 하나는 위로 하나는 아래로 갈렸다. 이 두 개의 나라 중 한 나라는 아래로 '숨은' 나라였다. 저자는 이 숨은 나라의 구성원을 '은국민(隱國民)'이라 명명한다. 대한민국 국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실상은 '숨은민국'의 국민이 적지 않으며, 대한민국의 건국과 존재 이유를 거부하면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는 그들의 실상이 바로 '은국민'이다. 은국민들은 한국인을 통칭하여 극우라고 부른다. 그러면서 저자는 명확한 경고를 덧붙인다. 저자는 숨은민국을 북한이나 중국 공산당의 단순한 하수인으로 축소하는 시각을 경계한다. 오히려 그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된 신념·조직·인적 네트워크를 갖춘 '복잡계'이며, 한국 사회의 문화·지식·정치 영역 깊숙이 뿌리내려 왔다고 주장한다. 책의 제목을 거꾸로 읽으면 '국민은 숨(breath)'이 된다는 분석도 주목할 만하다. 제목을 통해 국민의 목숨이 걸린 대한민국 상황에서 숨은민국이 대한민국의 숨통을 조이고 있는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출판기념회에서 책을 설명하는 저자 김미영 대표(동영상 캡처) 두 개의 지하정당에서 북한인권까지 책은 크게 세 개의 축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는 '숨은민국'을 움직여 온 두 개의 지하정당에 대한 역사적 추적이다. 숨은민국에 접근하는 방법으로 이 책에서 선택한 것은 두 개의 정당에 다가가는 것이다. 은국에 여러 개의 지하정당이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두 개의 정당으로 특정하는 것은 통일혁명당(통혁당)과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이다. 저자의 분석은 단호하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조용히 점령한 은국의 지도부는 통혁당, 그리고 은국민 대중은 민혁당을 통해서 대거 양산되었다고 보고 있다. 이 두 정당은 불법적 비밀정당 형태였지만 실체로서 존재했고, 몸을 숨길 뿐 사라진 적이 없다. 나아가 1960년대의 통혁당은 1990년대의 민혁당과 본질적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 주장이다. 두 번째 축은 주체사상파, 이른바 주사파에 대한 저자 본인의 장기 취재 기록이다. 1999년 '월간조선'과 '시대정신' 등을 통해 이루어진 김영환 그룹과의 인터뷰, 그리고 '전향'이 아닌 '전환'이라는 표현을 둘러싼 논쟁은 당시 한국 지성계와 운동권 내부의 인식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북한 정권의 건국 정통성을 인정한다는 발언이 대한민국 헌법과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 사상적 모순이 오늘날까지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를 추적한다. 세 번째 축은 북한인권 문제다. 중후반부로 갈수록 책은 북한인권 문제로 무게중심을 옮긴다. 김미영 대표는 1999년 이후 북한인권 운동에 투신해 전시·전후 납북자 구출 운동·정치범수용소 해체 운동·'통영의 딸' 구출 운동 등 굵직한 현안의 최전선에 서 왔다. 저자가 말하는 7가지 역사적 진단 저자는 이 책이 담고 있는 핵심 내용을 7가지로 정리한다. 한반도에서 공산주의자들의 권력 의지가 100년 이상 치열하게 지속되어 왔다는 것,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절대적인 적이 상존한다는 것, 대한민국과 우방국을 위협하는 공작망이 실재한다는 것, 반체제 지식인들에 대한 혁명 세화 공작이 종북 지하당의 건설로 이어졌다는 것(4·19 직후 통일혁명당, 5·18 이후 민족민주혁명당), 통혁당과 민혁당의 특징과 정치 세력화 성공, 지하 정당의 변신과 보수 우파 정당과의 화학적 결합에 따른 합법 정당 설립, 그리고 진정한 대한민국의 제도 정당 실종 상태가 그것이다. 숨은민국의 최종 귀결점에 대한 저자의 진단도 명확하다. 저자는 '숨은민국'의 귀결점은 결국 '원 차이나'이며 주사파·민혁당은 그것을 '중국식 개혁 개방'이란 말로 포장하여 북한의 나아갈 길이라고 말해 왔다고 분석한다. '중국식 개혁 개방'이란 '자유선거가 없는 시장경제'를 말하며 중국이 그런 체제를 성공적으로 만들어 왔다고 선전해온 것이라는 설명이다. 전쟁의 끝자락에서 희망을 말하다 프롤로그의 제목은 "어떤 전쟁의 끝자락에서"다. 저자는 이 제목 하나로 자신이 평생 살아온 삶의 좌표를 압축한다. 이미 수십 년째 이념 전쟁의 한복판을 걸어온 사람의 목소리로, 그는 독자들에게 이 책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분명히 밝힌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진정한 대한민국 사람들, 보통의 선량한 '한국인들'을 위한 것이다. 또한 자신의 국적을 정확히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쓴다. 실상은 '숨은민국'의 국민이 되어 살아가고 있으면서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라는 모종의 불안감이 있는 사람도 이 책의 독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결론부에서 저자는 절망이 아니라 희망을 선택한다. 숨은민국은 결코 단순하지도 만만치도 않다. 명백히 '복잡계'다. 그들의 신념도 이해해야 하지만 그들의 실력도 이해해야 한다. 그들의 신념과 실력을 압도할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세대가 나타나야 한다. 이 결론은 고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향한 호소로 마무리된다는 점에서 이 책의 성격을 규정한다. 저자 김미영은 누구인가 이 책의 무게는 저자의 이력과 분리될 수 없다. 저자 김미영은 서울대 국문과와 대학원(한국현대문학 석사)을 마치고, 한동대 국제법률대학원과 미국 노틀담 대학 법대에서 미국법과 국제인권법을 공부했다. 주체사상파(주사파) 학생운동권 전향 문제 특종으로 조선일보에 특채되어 북한문제를 주로 다루는 기자로 일했다. 책을 통해 한국의 현 상황의 위기를 경고하는 김미영 대표 그의 삶은 책상 위의 이론이 아니었다. 1999년부터 북한인권 운동에 투신하여 전후·전시 납북자구출운동에 헌신했고, 한국전쟁납북사건자료원 연구실장, 정치범수용소 해체운동과 오길남 박사 가족 '통영의 딸 구출운동'을 펼쳤으며, 황장엽 방미 수행단으로 동행했고, 유엔인권이사회에 NGO 활동가 자격으로 사이드이벤트를 여는 등 북한 김일성 3대의 반인도범죄와 전쟁범죄 규정을 위해 일했다. 신앙인으로서의 면모도 이 책의 저변을 흐른다. 잠시 김 대표에게 신앙이 없었다면 어떠했을까 생각해보면, 아마도 그녀는 주사파의 주요 인물로 자리잡았을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안 된 것은 하나님이 그녀를 사로잡고 있었기 때문에 반근대 세력들을 견제하는 데 지금까지 쓰임받은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필독서"와 "절규"의 사이에서 책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한 독자는 "저자 김미영 선생의 그동안의 아픔이 무엇인지, 절규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녀의 소박하지만 거창한 인생목적이 무엇인지 가슴으로 알게 해 주었다"며 "이 책은 사회과학 평론도 아니요, 문학작품도 아니요, 단순한 저널리스트의 취재수첩도 아니지만, 그 울림의 강도에 있어 일반 서적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게 크다"고 평했다. 또 다른 독자는 "부정선거와 법치 파괴를 통해 3권분립 헌정질서를 무너뜨리고 있으며, 경제노동악법 제정을 통해 산업기반 파괴와 국유화를 진행시키는 현실을 이 책이 홍콩이나 베네수엘라행 급행열차를 탄 느낌으로 그려냈다"며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반드시 일독을 권한다"고 밝혔다. 서점 구매 리뷰에서도 "작금의 시대에 꼭 읽어야 할 필독서"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한편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한 보수 기독교 논자는 "국민 대다수는 이 책을 읽어도 별 감흥이 없을 듯싶다. 이유는 그들은 공산주의를 포함한 좌익사상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라며 이념적 문맹이 이 책의 경고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이 시대에 이 책이 갖는 의미 〈숨은민국〉은 특정 진영의 주장을 담은 이념서로만 읽혀서는 안 된다. 이 책의 진정한 의미는 다른 곳에 있다. 공산주의 세력의 100년 권력 투쟁, 북한이라는 상존하는 적의 존재, 남한과 해외에까지 뻗은 공작망, 반체제 지식인에 대한 조직적 포섭, 통혁당과 민혁당의 성격 차이, 운동권 정치세력의 분화와 변신, 그리고 제도 정당의 실종까지를 하나의 체계적 세계관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단순한 회고록이나 고발서가 아니다. 건국 이후 대한민국이 한 번도 정면으로 대답하지 못한 질문, 즉 "이 나라 안에 이 나라를 부정하는 또 하나의 나라가 있는가"라는 물음에 김미영은 자신의 평생을 걸고 답한다.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이 질문 자체를 외면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분단 80년, 건국 78년이 된 대한민국이 스스로의 정체성과 생존을 진지하게 묻기 시작해야 할 때, 이 책은 그 불편한 성찰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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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15
  • 팍스 차이나(Pax Sinica)의 야망과 문명의 균열
    미국은 팍스 차이나를 결코 허락하지 않는다. AI 이미지 역사에서 강대국은 2인자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미국을 제치려는 야망은 ‘일대일로’ 전략을 통해 진행되고 있다. 중국의 ‘夢’이 세계를 제패할 것인가? 미국은 베네수엘라 마두로 체포와 이란의 전쟁을 통해 중국에게 경고장을 날렸다. 2인자를 용납할 수 없다는 경고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팍스 아메리카를 유지하려는 전략만은 아닐 것으로 보이다. 본지는 중동(이란 루트와 '저항의 축' 지원 배후), 아프리카(채무의 덫과 인프라 식민지 — 아이러니하게도 K-방산의 진출로가 된 역설), 유럽(일대일로 경제 침투 + 이슬람 인구학적 팽창 + 문화막시즘의 3중 포위 — 문 닫은 교회가 이슬람 사원으로 팔리는 유럽의 현실 The Korea Daily), 동남아(인도네시아 채무 함정 실례), 남미(베네수엘라·멕시코). 그리고 트럼프 반격의 효과와 한계, 기독교 문명의 내부 붕괴 문제를 담는 기획기사를 준비했다. <편집자 주> 서론: 세계를 재편하는 조용한 전쟁 2013년 시진핑 국가주석이 카자흐스탄에서 처음 밝힌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은 단순한 인프라 투자 계획이 아니었다. 그것은 21세기 팍스 차이나(Pax Sinica), 즉 중국 주도의 새로운 세계 질서를 구축하려는 100년 대전략의 출발 신호였다. 아프리카의 항구, 중동의 석유 루트, 유럽의 수도 한복판, 동남아의 철도, 남미의 광산까지 — 중국의 붉은 자본은 이미 지구의 혈관을 장악해 들어갔다. 그러나 이 전략의 더 깊은 차원에는 경제적 침투를 넘어선 문명의 교체가 자리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의 유물론적 세계관과 전체주의 통치 모델이 자유민주주의를 대체하는 것, 그리고 기독교 문명이 세속주의·이슬람·문화마르크시즘의 연합에 의해 무너지는 것이 이 대전략의 핵심 시나리오다. 아산정책연구원의 2026년 이슈브리프는 "강대국 일방주의와 예외주의가 횡행하며, 기존 국제질서를 규정짓던 정치·경제적 레짐들이 약화됐다"고 진단한다. 세계는 지금 무질서 속의 체제 전환기에 서 있다. "일대일로는 인프라 사업이 아니다. 그것은 중화 세계질서 재건을 위한 100년 전략이다" Ⅰ. 일대일로의 전 지구적 판도: 5개 전선의 실체 1) 제1전선— 중동: 이란과 저항의 축 일대일로의 지정학적 핵심은 이란이다. 이란은 아시아와 유럽, 남반구와 북반구를 연결하는 최대 규모의 국제 수송 회랑이자, 중국의 에너지 안보를 떠받치는 전략 거점이다. 중국은 이란과2021년25년 포괄 협력 협정을 체결하고, 석유·가스 개발에서 인프라, 군사 협력까지 전방위 연대를 구축했다. 이란이 하마스·헤즈볼라 등 이른바 「저항의 축」을 지원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 중·이란 경제 동맹이 자리한다. 그러나 2026년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군사 공격으로 이 구도에 균열이 생겼다. 러시아 분석매체 <프라우다>의 보도에 따르면 "이란 정부가 무너진다면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란을 잃으면 중국은 유라시아 대륙 지배의 핵심 고리를 잃는 셈이다. 현재 중동 지역은 미국-이스라엘-사우디 안보구조가 형성되는 계기가 마련되어 무질서에서 벗어나고 있으나, 불안정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2) 제2전선— 아프리카: 채무의 덫과 인프라 식민지 아프리카는 중국 일대일로의 최대 수혜지이자 최대 피해지다. 중국은 수백억 달러를 투입해 아프리카 주요국에 고속철도, 대형 항구, 고속도로를 건설했다. 케냐는 수도 나이로비와 항구도시 몸바사를 연결하는 고속철도 건설에 필요한 자금 90%를 중국에서 조달했으나, 현재 케냐의 총 공공부채는 GDP의 67%인 757억 달러까지 불어났고 중국은 세계은행에 이어 케냐 최대 채권국이 됐다. 앙골라의 대중국 채무는 190억 달러에 달한다. 이집트는 중국 자본으로 서울보다 큰 신행정수도(700㎢)를 건설 중인데, 중국의 세계 최대 국방부 청사를 본뜬 이집트 국방부 청사,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이슬람 사원 등이 여기 포함된다. 수에즈 운하의 통제권이 중국에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22년 아프리카 15개국 여론조사에서 영향력 및 긍정 평가 면에서 중국이 미국을 추월했다는 사실은, 아프리카에서의 소프트파워 전쟁도 중국이 앞서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역설도 존재한다. 중국이 수십조 원을 들여 닦아놓은 아프리카의 도로와 항구가 이제 한국의 K2 흑표 전차가 달리는 무대가 되고 있다. 모로코 정부가 K2 전차 400대 도입을 검토하는 배경에는, 중국이 깔아놓은 고하중 인프라가 한국 중무기 체계의 진출 가능성을 열어줬다는 얄궂은 나비효과가 있다. 지정학은 때로 아이러니로 말한다. 중국의 ‘夢’과 미국과의 패권 경쟁은 단순한 1위 싸움이기 보다 자유민주국가의 붕괴와 맞물려있다. AI이지미 제작 3) 제3전선 — 유럽: 두 갈래 침투, 일대일로와 이슬람 유럽은 두 방향에서 동시에 포위되고 있다. 하나는 중국의 경제적 침투이고, 다른 하나는 이슬람의 인구학적 팽창이다. 이탈리아는 2019년 G7 국가 중 유일하게 일대일로에 서명했다(2023년 탈퇴). 중국은 베네치아를 포함한 이탈리아 전역에서 상업 부동산을 잠식했고, 독일의 핵심 제조업체들을 인수했다. 2016년 산업용 로봇 분야 세계 최강 쿠카(KUKA)가 중국 자본에 넘어간 것이 그 상징적 사건이다. 이를 계기로 독일은 첨단기술 기업에 대한 외국 자본 인수 심사를 강화하는 법을 만들었다. 그러나 더 심각한 위협은 문화의 내부 붕괴다. 유럽에서는 이민과 다문화주의가 기독교 문명의 정체성을 무너뜨리고 있다. 프랑스 전체 인구의 10% 내외가 무슬림이다. 영국에서는 해마다 220개의 교회가 폐쇄되는 반면 110개만 새로 세워지고, 문을 닫은 교회의 상당수가 이슬람 사원으로 팔리고 있다. 독일은 지난 10년간 515개의 가톨릭교회가 공식 폐쇄됐고, 네덜란드에서는 향후 4년 내 700곳 이상의 개신교회가 사라질 전망이다. 카메룬 맘페 교구의 앤드류 은키 대주교는 "유럽의 교회가 잠들었기 때문에 유럽이 이슬람화되고 있다. 역사를 보면 교회가 복음과 멀어진 곳에 이슬람이 기회를 노리고 들어왔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2025 국가안보전략(NSS)조차 "유럽은 이민과 다문화주의로 붕괴되고 있는 문명적 쇠퇴지역"으로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교회가 잠들면 이슬람이 들어온다. 유럽이 그 생생한 증거다" — 아프리카 대주교의 경고 4) 제4전선 — 동남아: 채무의 덫과 반중 감정의 확산 동남아시아는 중국 일대일로의 '쇼윈도'이자 균열의 진원지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반둥 고속철도는 동남아 최초의 고속철도로 홍보됐지만, 실제 이용객은 예상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고속철도 연간 매출이 약1,500억 원인데 중국에 갚아야 할 이자만 매년 1,700억 원에 달해, 2026년 2월 인도네시아 정부는 결국 국가 예산을 투입해 중국 개발은행 대출금을 갚기로 결정했다. 당초 "국민 세금 없이 민간 자본(B2B)으로만 하겠다"던 약속은 산산조각이 났다. 내부에서 "중국의 채무의 덫에 제대로 걸렸다"는 비판이 거세다. 필리핀은 두테르테 정부 시절 중국과 대규모 일대일로 협력을 맺었지만, 남중국해 분쟁이 격화되면서 친미 노선으로 선회했고, 일대일로 사업들을 재검토하고 있다. 미얀마는 쿠데타 이후 고립 속에서 중국 의존도가 더욱 심화됐다. 라오스는 중국-라오스 철도 완공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GDP가 21% 증가했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지만, 국가 부채가 GDP의 100%를 돌파하며 사실상 중국의 경제적 속국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동시에 제기된다. 5) 제5전선 — 남미: 베네수엘라와 자원 패권 남미에서 중국의 전략적 베이스캠프는 베네수엘라였다. 마두로 정권에 수십억 달러를 대출해 주고, 원유로 상환받는 구조로 중국은 베네수엘라의 석유 생산을 사실상 지배했다. 멕시코에서는 중국 자본이 상권과 건물을 잠식하고, 친중 성향의 정부와 결탁해 현지 소상공인을 고사시키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브라질·아르헨티나·칠레의 광산 자원 역시 중국 국유기업들의 주요 투자 대상이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적극 개입이 이 전선에서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베네수엘라에 대한 마두로 체포 압박과 군사·경제 제재는 중국의 서반구 진출에 실질적 타격을 줬다. 이로 인해 남미에서 중국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있으나, 브라질·아르헨티나 등 좌파 정부와의 관계는 여전히 긴밀하다. Ⅱ. 문화 막르크시시즘과 이슬람: 서구 문명 내부 붕괴의 두 엔진 일대일로가 '외부로부터의 침투'라면, 문화마르크시즘(Cultural Marxism)과 이슬람주의는 '내부로부터의 붕괴'를 주도하는 두 엔진이다. 이 두 세력은 표면적으로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자유민주주의와 기독교 문명을 해체한다는 점에서 구조적으로 공조한다. 문화 마르크시즘은 1960년대 프랑크푸르트학파에서 발원해, 전통 가족·종교·도덕·국가 정체성을 해체하는 이념으로 서구 교육·미디어·문화 전반에 침투했다. 동성애 이념, 젠더 유동성, 낙태 권리, 역사 왜곡, 탈식민주의 담론 등은 모두 이 흐름의 산물이다. 유럽에서는 이 흐름이 기독교 설교를 '혐오 발언'으로 규제하고, 전통 가족 개념을 '차별'로 낙인찍는 법적 환경을 만들어냈다. 서유럽 기독교인들 중 대부분은 명목상 기독교인에 불과하다. 영국의 경우 인구의 약 70%가 문화적·역사적 이유로 기독교인이라고 밝히지만, 정기적으로 교회에 출석하는 이는 7%에 불과하다. 이탈리아·오스트리아·포르투갈·아일랜드에서는 80% 이상이 기독교인이라고 답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동성결혼과 임신중절에도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이 문화마크르시즘이 만들어낸 '탈기독교 기독교인'의 초상이다. 이슬람은 이 공백으로 파고든다. 유럽의 이슬람 인구는 프랑스에서만 약 600만 명(전체 인구의 10%)에 달하고, 영국 400만 명, 독일 50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가 2010년대 이후 반복되면서 유럽의 기독교는 "문명 간 충돌"의 전면에 불가피하게 서게 됐다. 유럽 극우 정당들이 기독교를 이민자·세속주의에 맞선 '문화적 방패'로 활용하는 것은 이 맥락에서 나온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한 신앙 부흥이 아니라 정치적 정체성 전쟁이다. "교회가 비어가는 속도만큼 유럽은 포스트-기독교 문명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2기는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자처하는 전략을 가지고 중국과 보이지 않는 전쟁을 하고 있다 Ⅲ. 미국의 반격: 효과와 한계 트럼프2기 행정부는 이 흐름을 차단하려는 가장 적극적 행위자로 등장했다. 베네수엘라 마두로 체포 압박, 이란 군사 공격, 전 세계 상호관세 부과, NATO 동맹국에 대한 방위비 증액 압박 등 일련의 조치들은 중국-이란-베네수엘라 삼각 축을 해체하려는 전략적 계산에서 나온 것이다. 특히 이란 공격은 일대일로의 핵심 육로 통로를 차단하려는 의도를 내포한다. 서반구에서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중국의 남미 입지는 상대적으로 약화됐고, 동맹국들의 중국 의존 탈피도 가속화되고 있다. 그러나 역설도 있다. 트럼프의 일방주의는 전통 동맹국인 유럽과의 관계를 약화시키고, 개도국들에게 "미국보다 중국이 더 믿을 만한 파트너"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 2025년 중국은 글로벌 사우스에서 잇따라 무역협정을 체결하며 이 틈새를 파고들었다. 또한 트럼프의 상호관세는 2026년 2월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위법 판결을 받아 무효화됐다. 이로 인해 대중국 협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설령 관세 압박이 지속된다 하더라도, 중국은 유라시아·아세안·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에서 일대일로 전략을 계속 확대하며 미국의 압박을 분산시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미국의 반격은 필요하고 일정 부분 효과적이지만 충분하지 않다. 체제 경쟁에서의 승리는 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신뢰, 가치, 그리고 문명의 내적 활력이 함께해야 한다. Ⅳ. 결론: 문명 방파제는 어디에 세워지는가 팍스 차이나의 야망은 경제·외교·문화·정치·이념의 전방위 침투를 통해 전진하고 있다. 그 최종 표적은 자유민주주의이며, 더 깊은 곳에서는 기독교 문명이다. 일대일로는 경제 네트워크처럼 보이지만, 그 핵심은 중국 중심의 문명 패러다임으로 세계를 재편하는 것이다. 이슬람주의와 문화마르크시즘은 서구 내부에서 기독교 문명을 해체하는 협력자 역할을 한다. 중국공산당이 이 두 세력을 의식적으로 활용하는지의 여부와 별개로, 결과론적으로 이들의 목표는 수렴한다. 역사는 반복된다. 5세기 서로마 제국은 외부의 침략보다 내부의 도덕적 해이와 정체성 상실로 무너졌다. 오늘의 서방 문명도 동일한 경로를 걷고 있다. 교회가 비어가고, 가정이 해체되고, 진리의 개념이 해체되는 곳에, 권위주의와 전체주의가 새로운 질서로 들어온다. 이스라엘·미국·한국은 그나마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최전선에 서 있는 나라들이다. 이 세 나라가 각자의 내부 균열을 치유하지 못한다면, 팍스 차이나의 파도를 막을 방파제는 없다. 그 방파제는 군사력도, 경제력도 아니다. 참된 방파제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 진리에 기반한 공동체, 그리고 자유와 생명의 가치를 목숨으로 지키려는 시민들의 각성이다. 한국 교회와 사회가 이 시대를 읽는 눈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팍스 차이나의 파도를 막는 방파제는 군사력이 아니다. 진리와 공동체 안에 세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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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14
  • 한국 교회 목회자 절반 이상, 이미 AI로 설교 준비한다
    챗GPT가 세상에 등장한 지 불과 2년 반 만에, 한국 교회 강단의 풍경이 조용히 바뀌고 있다. 이제 목회자 두 명 중 한 명 이상은 설교를 준비하면서 인공지능(AI)의 도움을 받는다. 불과 2년 전만 해도AI로 설교를 준비한다는 목회자는 열 명 중 두 명도 채 되지 않았다. 목회 현장 깊숙이 파고든 AI가 한국 교회에 새로운 기회와 심각한 도전을 동시에 던지고 있다. 목회데이터연구소와 희망친구 기아대책이 2025년 5월, 전국 담임목사 500명과 개신교 성도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교회 트렌드2026」 조사(AI 목회 코파일럿)에서 이 같은 실태가 구체적인 수치로 확인됐다. AI가 목회 현장에서 단순한 유행을 넘어 실질적인 사역 도구로 자리 잡아가는 과정과, 그 이면에 한국 교회가 직면한 신학적·영성적 과제를 짚어본다. 2년 새3배 이상 급증… "목사님도AI 씁니다" 이번 조사에서 가장 주목받는 수치는 단연 목회/설교 분야의 AI 사용률이다. 2023년 3월 17%에 불과했던 수치가 2025년 5월 58%로 껑충 뛰었다. 3배 이상의 증가율이다. 목회자의 전반적인 AI 사용률 역시 같은 기간 41%에서 80%로 두 배 가까이 높아졌다. AI를 아예 쓰지 않는 목회자가 이제는 다섯 명 중 한 명꼴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이는 한국 사회 전반의 AI 확산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조사전문기관 컨슈머인사이트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국내18~65세 성인 가운데 생성형 AI를 사용해본 경험이 있는 비율은 75%에 달하며, 한 달에 한 번 이상 사용하는 활성 이용자 비중도 61%에 육박한다. 교회가 사회 흐름의 담장 밖에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AI 활용 범위도 넓어졌다. 2023년에는 설교 또는 강의 준비를 위한 자료 획득에 집중됐던 반면(95%), 2025년 조사에서는 성경 공부 준비(+8%p), 교회 행사 기획(+6%p), 기도문 생성(+5%p) 등 콘텐츠 생성과 기획 전반으로 활용 영역이 확대됐다. AI가 단순 검색 도구에서 실질적인 사역 보조 수단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만족은 절반, 5점 만점에3.5점… "아직은 아쉽다" 그러나 현장의 만족도는 사용률만큼 높지 않다. AI를 목회/설교에 활용해본 목회자들의 55%가 만족한다고 답했지만, 5점 만점 기준 평균은 3.5점에 그쳤다. 10명 중 1명(11%)은 불만족을 표했다. 이는 AI가 설교 준비의 효율성을 높여주지만, 목회자의 고유한 신학적·목양적 필요를 아직 충분히 채우지 못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설교의 어떤 부분에 AI를 쓰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목회자와 성도 사이에 뚜렷한 온도 차가 드러났다. 설교 예화나 자료 수집에 대해서는 목회자의 93%가 적절하다고 답한 반면, 성도는 66%에 그쳤다. 설교문 주제 선정에서도 목회자(68%)가 성도(44%)보다 24%p 높은 긍정률을 보였다. 가장 첨예한 갈등 지점은 설교문 작성이다. 목회자의 44%만이 AI로 설교문을 직접 작성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답했고, 성도는 65%가 적절하지 않다는 반대 의견을 보였다. 성도들에게 설교문은 여전히 목회자의 영혼과 묵상이 담긴 고유한 산물이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게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특이한 점은 연령별 차이다. 49세 이하 목회자는 58%가 설교문AI 작성을 적절하다고 봤지만, 60세 이상은 46%로 낮아졌다. 젊은 목회자일수록 AI에 더 열려 있다. 찬성vs 반대, 핵심 논거는"효율" 대"묵상" AI를 설교문 작성에 활용하는 것에 찬성하는 목회자들이 드는 이유는 명확하다. 참고 성경구절이나 문헌을 찾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서라는 응답이 60%로 압도적 1위였고,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설교를 준비할 수 있어서(30%)가 뒤를 이었다. AI를 사역의 속도와 질을 높이는 코파일럿으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반면 반대 측의 논거는 전혀 다른 차원에 있다. 설교 준비에 필요한 개인적 묵상과 연구가 줄어들어서라는 이유가 65%로 단연 1위였다. 설교자의 생각과 노력이 들어가지 않아서(29%)가 그 뒤를 이었다. AI가 주는 편의가 목회자의 영적 사고력과 신학적 치열함을 무디게 할 수 있다는 우려다. 설교를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닌 영적 산물로 보는 한국 교회의 전통적 설교관이 AI와 충돌하는 지점이다. 목회자44% "AI, 설교 준비의 필수 도구 될 것" 향후 전망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목회자의 52%는 AI가 설교 준비에서 제한적인 역할에 그칠 것이라는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44%는 필수적인 도구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절반에 가까운 목회자가 AI를 일시적 유행이 아닌, 미래 사역 환경의 핵심 인프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이미 AI를 목회에 써본 목회자의 63%는 앞으로 AI를 더 많이 사용할 것 같다고 답했다. 아직 목회에는 도입하지 않았지만 AI 사용 경험이 있는 목회자들 사이에서도 향후 목회 활용 의향이 63%에 달했다. 현장 적용을 관망해온 목회자들이 실제 도입을 본격 검토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목회자81%, "성도 맞춤형AI 신앙 서비스 도입하고 싶다" AI를 설교 준비 도구로 쓰는 것을 넘어, 성도를 위한 신앙 서비스에 AI를 도입하고자 하는 열망도 높았다. 개인의 신앙 수준과 영적 필요에 맞춰 설교, 성경공부, 묵상 자료를 제공하는 AI 맞춤형 신앙 서비스에 대해 목회자의 81%가 활용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성도의 61%도 긍정적 반응을 보였지만, 목회자의 열망이 20%p나 더 높았다. 성도들이 가장 원하는 AI 신앙 서비스 1위는 상황에 맞춘 묵상과 찬양 콘텐츠 제공(34%)이었으며, 신앙 상태에 따른 성경공부 안내(28%), 나에게 맞는 설교 추천(22%) 순이었다. AI를 일방적 정보 제공자가 아니라, 자신의 영적 상황에 반응하는 맞춤형 영적 동반자로 기대하는 성도들의 심리가 반영됐다. 교회 전산화 분야에서는 목회자와 성도 모두 교회 행정 전산화(각각 64%, 61%)와 회계 및 예산 관리를AI 도입 최우선 과제로 꼽아, 핵심 사역 외 행정 부담을 줄이는 데AI가 먼저 쓰이길 기대했다. 도구는 왔다, 지혜가 남았다 이번 조사가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함의는 수치 이면에 있다. AI 사용률의 폭발적 증가 뒤에는 목회자들이 조용히 씨름하는 질문이 있다. 기술이 가져오는 편의성이 영성의 깊이를 대체할 수 있는가. AI가 생산해내는 매끄러운 설교문이 목회자의 치열한 신학적 묵상과 기도에서 우러나온 말씀을 대신할 수 있는가. AI 시대 교회의 과제는 기술을 거부하거나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지혜롭게 다루는 영성과 안목을 갖추는 것이다. 연구소 측은AI 도입의 목표는 확보된 시간을 성도를 향한 돌봄과 깊은 영적 묵상에 재투자하는 데 있어야 하며,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성도와의 교제, 심방, 기도라는 본질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전략을 세운 다음에야 전쟁을 할 수 있고, 참모가 많아야 승리할 수 있다는 잠언의 지혜가AI 시대에도 유효한 이유다(잠24:6).
    • 이슈와 진단
    • 이슈 진단
    2026-04-13
  • '극우 몰이와 극우 프레임'의 함정을 극복하라
    들어가며 : 낙인은 진리가 아니다 한국 사회와 교회 안에서 '극우'라는 단어가 무서운 속도로 퍼지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2024년 12·3 비상계엄 선포를 전후하여, 이를 지지하거나 옹호하는 목사와 성도들을 향해 이 단어가 집중 포화처럼 쏟아지고 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 교회개혁실천연대 등 교계의 이른바 진보 진영 단체들은 일부 목회자들을 향해 '극우 선동'이라 규정하고, 나아가 보수 성향의 일반 성도들과 교회를 향해서도 '극우'의 이름표를 붙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냉정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극우'는 과연 중립적이고 정확한 언어인가? 아니면 상대방의 입을 막고 교회 안에 분열을 조장하는 정치적 무기인가? 한 집단을 '극우'라 부르는 것이 '정의'와 '공의'를 실현하는 행위인가, 아니면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도덕으로 포장하는 선동인가? 본고는 이러한 물음들을 중심으로, 한국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극우 프레임' 씌우기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교회가 나아가야 할 건강한 방향을 모색한다. 1. '극우'라는 단어의 정치적 폭력성극우의 개념적 정의와 그 한계 학문적으로 '극우(extreme right / far-right)'는 단순히 보수적 입장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극우의 핵심적 특징으로는 초보수주의, 권위주의, 국수주의, 극단적·폭력적 반공주의, 에스닉 내셔널리즘, 극단적 반이민 정서 등이 꼽힌다. 무엇보다 극단(極端)이라는 말이 함의하듯, '폭력성'과 '반민주적 전체주의'가 극우 개념의 핵심에 놓여 있다. 히틀러의 나치즘이 극우를 대표한다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자명하다. 단순한 정치적 보수주의나 특정 지도자 지지가 곧 극우를 뜻하지 않는다. 실제로 목회데이터연구소와 문화선교연구원, 한반도평화연구원이 2025년 공동 발표한 '한국 개신교의 정치 문화 지형 조사'에 따르면, 서부지법 습격 사태를 '국민저항권'이라 정당화한 응답자를 극우로 분류했을 때, 한국교회 내 극우 비율은 교인 13.5%, 목회자 12.9%에 그쳤다. 즉 한국교회 내 다수는 극우와 거리가 먼 보수 내지 중도층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극우 교회', '극우 목사'라는 표현이 언론과 진보 교계 단체들에 의해 마치 한국교회 전체를 규정하는 언어인 양 사용되고 있다. 낙인 이론으로 보는 '극우' 프레임 사회학자 베커(Becker, 1963)의 '라벨링 이론(labeling theory)'은 이 문제를 정확히 설명해 준다. 보수적 입장을 '극우'로 규정하는 언어 전략은 단순한 수사를 넘어 '정치적 라벨링의 기능'을 수행한다. 한 번 '극우'라는 라벨이 붙으면, 해당 인물이나 단체는 무슨 주장을 하든 편견과 혐오의 렌즈를 통해 해석되기 쉽다. 이처럼 라벨은 개별 주장의 내용이 아니라, '누가 말했는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게 만드는 효과를 유발하며, 결과적으로 정치적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위험이 있다. 심리학적으로도, '극우'라는 프레이밍은 상대 집단을 향한 도덕적 공황(moral panic)을 조성한다. 특정 집단이나 의견이 언론을 통해 '사회적 위협'으로 묘사될 때, 대중은 이를 과잉 반응하며 공포와 배제의 감정을 공유하게 된다. 시장경제를 옹호하거나, 안보를 중시하고, 전통적 가치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 자동으로 '반민주', '혐오적', '위험한 극단주의'로 포장될 때, 이는 단순한 정치적 차이를 넘어 사람의 정체성 자체를 파괴하는 폭력이 된다. 2. 한국교회 안에서 '극우 몰이'가 작동하는 방식비판에서 낙인찍기로의 전환 12·3 계엄 이후 한국교회 진보 진영의 일부는 정당한 비판의 영역을 넘어섰다. 기윤실과 교회개혁실천연대 등이 주도한 기자회견에서 이들은 보수 성향 목회자들을 '거짓과 불법을 추종하는 극우 정치권'으로 규정하고, 한국교회 전체가 이 범주에 포함된 것처럼 몰아갔다. 물론 계엄을 법적·헌법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당연히 허용되는 행위다. 그러나 '계엄이 불법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탄핵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신앙적·정치적 소신을 가진 성도와 목사를 '극우'로 낙인찍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더욱이 진보 진영은 스스로를 '정의'와 '공의'의 대변자로 자리매김하면서, 그들과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도덕적으로 열등한 '극우'로 배치하는 이항 대립 구조를 교회 안에 만들어냈다. 이는 신앙의 언어를 빌린 정치적 선동이다. 기윤실 등이 성명에서 계속 사용하는 '공의', '회개', '내란 부역'이라는 표현들은 신학적 언어처럼 들리지만, 사실상 그들의 정치적 입장을 하나님의 뜻으로 동일시하는 위험한 신학적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 교회 내 분열을 '정의'로 포장하는 논리의 구조 교회개혁실천연대와 기윤실 등의 성명 패턴을 들여다보면 일정한 논리 구조가 드러난다. 첫째, 자신들의 정치적 판단(계엄=내란, 지지=부역)을 성경적 진리로 선언한다. 둘째, 이 진리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을 '극우', '거짓 선지자', '내란 선동자'로 규정한다. 셋째, 이러한 규정을 근거로 교회 안에서의 단절과 배제를 '예언자적 사명'으로 정당화한다. 이 논리는 겉으로는 개혁의 언어를 사용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교회를 정치적으로 분열시키는 선동의 구조다. 문화선교연구원 백광훈 원장의 분석은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그는 극우적 입장을 과잉 조명하면 중도층도 극우 견해에 동조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는 역설이다. 극우를 문제삼겠다는 진보 진영의 과잉 프레이밍이 오히려 극우적 성향을 강화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보수 개신교인이 정치에 참여할 때는 기독교적 정체성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하는 반면, 진보 개신교인이 정치에 참여할 때는 기독교적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로 인해 '보수 교회=극우'라는 편향된 인상이 굳어지게 된다. 3. 선동적 극우 프레임이 교회에 미치는 해악신앙 공동체의 해체와 언어 폭력 교회 안에서 '극우'라는 언어가 무기처럼 사용될 때, 그 첫 번째 피해는 신앙 공동체의 신뢰다. 세대를 이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함께 예배하고, 섬기며, 기도해 온 공동체가 정치적 견해 차이로 인해 '극우'와 '정의파'로 나뉠 때, 교회는 더 이상 복음 위에 세워진 하나님의 가족이 아니라 이념 대립의 전장이 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찢는 죄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낙인찍기는 언어 폭력의 성격을 띤다.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하거나 계엄의 합법성에 다른 견해를 가진 성도를 '내란 부역자'라 부르는 것은, 그 사람의 다년간의 신앙 여정과 인격 전체를 부정하는 행위다. 한국교회의 역사와 전통, 보수 신학의 토양 위에서 세워진 수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하루아침에 '극우'로 규정되는 것은, 그 자체로 교회 공동체를 향한 심각한 영적 폭력이다. 복음의 공간을 정치로 잠식하는 위험 교회는 본질적으로 정치 집단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6장 12절에서 이렇게 가르쳤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이데올로기나 보수·진보라는 정치적 진영 논리의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규정한다면, 복음은 물론이고 한 영혼의 소중한 가치까지 훼손된다. 예수님도, 사도 바울도, 베드로도 보수주의자이거나 진보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들이 추구했던 이념은 오직 하나님의 나라였다. 한국교회 안에서 '극우' 프레임이 활발히 사용될수록, 복음이 울려야 할 공간을 정치 담론이 잠식하게 된다. 기윤실이나 교회개혁실천연대가 성명을 내고 기자회견을 여는 공간이 원래는 복음을 전하고, 고아와 과부를 돕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자리여야 한다. 정치적 입장을 '교회의 공의'로 포장할 때, 교회는 세상의 다른 정치 세력과 다를 바가 없어진다. 한국교회 대외 신뢰도의 추가 하락 아이러니하게도 '극우' 프레임을 남발하는 쪽이 한국교회의 외부 신뢰도 하락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 교계 내부에서 서로를 '극우'라 부르는 모습은 사회 일반에게 한국교회가 이념 대결로 분열된 집단이라는 인상을 준다. 복음주의 교계 지도자들 스스로가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교회가 거짓과 불법을 추종하는 극우 집단으로 오인받고 있다'고 경고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 오인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교회 밖에서 보는 시선은 '정의파'와 '극우파'를 구별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교회는 그저 정치 싸움을 하는 집단으로 보일 뿐이다. 4. 비판과 낙인의 경계를 어디에 그어야 하는가정당한 비판과 선동적 낙인의 차이 물론 한국교회 안에 실제로 성경적으로 비판받아야 할 행태가 있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일부 목회자들이 공개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설교단에서 쏟아내거나, 신도들을 정치 집회에 동원하거나, 폭력적 행동을 미화하는 발언을 했다면, 이는 교회 내에서 마땅히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한 비판은 정당하고 필요하다. 그러나 비판과 낙인찍기는 엄연히 다르다. 비판은 구체적인 행동과 발언을 대상으로 하고, 당사자가 개선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낙인찍기는 정체성 전체를 타겟으로 삼아 배제와 혐오의 언어로 몰아간다. 특정 목사의 발언이 잘못되었다면 그 발언을 비판해야지, '극우 목사', '극우 교회'라고 낙인찍어 그 사람과 그 공동체 전체를 사회적으로 매장하려는 시도는 기독교적 가치와 배치된다. 성경은 우리에게 죄를 책망하되 소망을 가지고 온유한 영으로 회복시키라고 가르친다(갈 6:1). 정치적 다양성을 품을 수 있는 교회의 역량 성경은 정치 제도나 정당을 지정해 주지 않는다. 로마서 13장에서 사도 바울이 권세에 순종하라 했을 때, 그가 의도한 것은 특정 정권이나 정책을 무조건 지지하라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 아래에서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악을 억제하는 기능으로서의 국가를 존중하라는 것이었다. 그 말씀으로부터 '윤석열 지지'를 도출하거나 '윤석열 반대'를 도출하는 것은 모두 성경 본문의 과도한 정치화다. 한국교회는 역사적으로도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을 품어왔다. 반공주의의 토양 위에서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성도가 있는가 하면,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그리스도인도 있었다. 이 다양성은 교회의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복음의 보편성을 보여주는 증거다. 복음은 좌도 우도 아니다. 복음은 정치를 초월하여 모든 이념과 제도에 대해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한다. 교회가 이 보편성을 잃고 특정 정치 진영의 도구가 될 때, 그것이 진보든 보수든, 교회는 교회로서의 본질을 상실한다. 5. 해결 방안 : 프레임을 넘어 복음으로첫째, 언어의 회복 — '극우' 대신 구체적 기술로 교계 안에서 '극우'라는 단어의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만약 비판이 필요하다면, 극우라는 일반화된 낙인 대신 구체적 행동과 발언을 기술하는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전광훈 목사의 이러이러한 발언은 폭력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 '손현보 목사의 설교 도중 신도 폄훼 발언은 사목자로서 부적절하다'는 방식의 구체적 비판은 정당하다. 그러나 이것을 '극우 목사들'이라는 통칭으로 일반화하는 것은 언어의 부정직함이다. 둘째, 교회 내 정치 다양성의 존중과 복음적 원칙의 재확인 한국교회는 정치적으로 다양한 성도들이 복음 위에서 함께하는 공동체임을 재확인해야 한다.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고 해서 같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형제자매를 교회 밖으로 밀어내는 행위는 교회론적으로 심각한 문제다. 교회는 구원받은 죄인들의 공동체이며, 그 안에는 보수도 진보도, 탄핵 찬성도 반대도 있을 수 있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은 그들 모두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삶을 가르치는 것이다. 정치 판단이 아니라 복음이 교회의 통일성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 셋째, 교계 기관의 정치적 중립성 원칙 수립 기윤실, 교회개혁실천연대 등 교계 기관들은 특정 정치 사안에 대해 단정적 성명을 내기 전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 성명의 언어가 신앙적 권위를 빌려 정치적 입장을 관철하려는 시도로 읽힐 때, 그 기관의 공신력은 오히려 추락한다. 네덜란드 수상이자 신학자였던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가 가르쳤듯이,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이 드러나는 것은 교회가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때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왕권 아래 살아갈 때다. 교계 기관은 정치 운동의 외곽 기지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도구여야 한다. 넷째, 이성적 토론과 사실 기반 비판의 문화 형성 정치적 입장은 다를 수 있지만, 그 차이를 감정적 낙인이나 윤리적 비난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 토론과 사실 기반의 비판으로 풀어가는 성숙한 교회 문화를 형성해야 한다. 목회자들도 설교단에서 정치적 발언을 할 때 그것이 신앙 고백적 차원인지, 단순한 정치적 선호의 표현인지를 구분하고, 신중하게 언어를 선택해야 한다. 성도들도 다양한 견해를 가진 형제자매를 '극우' 혹은 '좌파 프락치'라고 몰아가는 진영 논리의 유혹을 물리쳐야 한다. 다섯째, 하나님 나라 시민으로서의 정체성 재정립 궁극적으로 한국교회가 극우 프레임의 악순환을 끊어내는 길은, 세상의 정치 논리보다 하나님 나라의 논리를 우선시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먼저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요, 그 다음이 대한민국의 시민이다. 우리의 일차적 정체성이 정치 진영이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임을 확인할 때, '극우' 혹은 '좌파'라는 세상의 레이블은 그 힘을 잃는다. 교회가 교회다워질 때, 세상의 정치 프레임은 교회 안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나가며 : 교회는 프레임이 아니라 복음으로 말해야 한다 한국교회 안에서 '극우 프레임'을 씌우는 선동적 움직임은 여러 차원에서 잘못된 접근이다. 그것은 개념적으로 부정확하고, 신학적으로 위험하며, 교회 공동체를 파괴하는 결과를 낳는다. 정당한 비판을 넘어 집단 낙인찍기로 향하는 순간, 그것은 복음이 아니라 선동이 된다. '정의'와 '공의'를 외치면서 형제자매를 배제하고, '교회 개혁'의 이름으로 교회를 분열시키는 것은 성경적 예언자 사역이 아니다. 한국교회에 지금 필요한 것은 이쪽 저쪽을 향한 정치적 성명이 아니다. 교회는 좌도 우도 아닌 오직 십자가의 복음 위에 서야 한다. 세상의 정치가 교회를 분열시키려 할 때, 교회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가 되어 그 분열에 저항해야 한다. 에베소서 4장 3절의 말씀대로,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것, 이것이 지금 한국교회가 걸어야 할 길이다. 극우 프레임을 넘어서는 힘은 더 강한 정치 언어에서 오지 않는다. 그것은 복음에서 온다. 교회가 다시 복음으로 말할 때, 세상의 모든 프레임은 무력해진다. 한국교회가 세상의 낙인찍기 방식을 교회 안으로 들여오는 유혹을 물리치고, 진리와 사랑 안에서 서로를 세워가는 공동체로 거듭나기를 촉구한다.
    • 길과생명연구소
    2026-04-10
  • '진일교 목사의 민법 개정안 옹호론' 어디서 어떻게 문제가 있나
    진일교 목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부끄러움은 왜 우리의 몫인가’ 2026년 1월 9일, 국회에는 '민법 일부개정법률안'(최혁진 의원 대표발의, 의안번호 제2215932호)이 제출되었다. 표면적 목적은 비영리법인의 감독 강화와 반사회적 법인 해산이었으나, 교계는 즉각 이를 '종교법인 해산법', '정교유착방지법'으로 규정하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한교총, 한기총, 대광기총 등 주요 개신교 연합기구들이 일제히 반대 성명을 발표했고, 한국교회법학회는 국회에 상세한 검토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진일교 목사가 해당 민법 개정안에 대한 교계의 반발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부끄러움은 왜 우리의 몫인가’는 제목의 글을 페이스북에 3월 28에 올렸다. 그는 개정안이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며, 통일교·신천지 같은 특정 반사회적 단체를 겨냥한 합리적 제도 보완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교계의 반발이 오히려 개신교를 통일교·신천지와 같은 반사회적 집단으로 보이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과연 진일교 목사의 주장은 얼마나 정확한가. 그의 주장은 한국교회의 전체를 대표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시각과 주장에 동조하는 이도 있다. 그러므로 그의 주장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다루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본지는 한국교회법학회장인 서헌제 중앙대 명예교수, 전남대 로스쿨 정종휴 명예교수(한국민법학회장·한국법사학회장 역임), 그리고 구병옥 개신대학원대 교수(한국실천신학회 이사장)가 각각 발표한 상세한 법적·신학적 분석을 기초로 진일교 목사 주장의 각 논거를 해부한다. 1. 진일교 목사 주장의 핵심 논지 정리 진일교 목사의 글은 크게 다섯 가지 논지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이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비판의 출발점이다. ① 개정안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 진일교 목사는 "헌법 제20조와 제37조는 개인의 신앙과 종교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보호하고 있지만 국가로부터 법인격을 취득해 현실의 사회적, 경제적 활동을 하는 단체는 실정법을 따라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즉 법인격을 가진 종교단체는 일반 비영리법인과 같은 지위에서 민법 규제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다. ② 개정안은 통일교·신천지만을 겨냥한다 그는 "이번 법안은 눈을 씻고 보아도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종교의 고유성을 보장하고 본질을 훼손하지 않도록 경고하는 법안이다"라고 주장하며, 개정안이 통일교·신천지처럼 조직적으로 정치에 개입한 단체만을 규제 대상으로 한다고 강조한다. ③ 정상적 교회는 해산당할 위험이 없다 진일교 목사는 "정상적으로 고유의 목적을 실행하고 있는 종교단체나 교회를 폐쇄할 근거가 없다"며, 교계의 반발을 '지레 짐작'이라고 치부한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라는' 격이라는 것이다. ④ 교계의 반발이 개신교를 이단과 동일시하게 만든다 그는 "비그리스도인들은 사실 신천지나 통일교와 개신교를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교계의 과잉 반응이 오히려 개신교를 반사회적 집단과 동일시하는 시각을 강화한다고 주장한다. ⑤ 종교 혜택을 받으려면 실정법을 준수해야 한다 그는 "비영리단체나 종교시설로 구분되면 국가는 각종 세금 감면혜택을 준다. 세금감면을 하는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하면서, 혜택을 누리는 종교단체가 법을 위반하면 혜택을 거두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거를 제시한다. 2. '법인격을 취득하면 실정법을 따라야 한다'는 논거의 오류 진일교 목사의 첫 번째 논거, 즉 법인격을 취득한 단체는 일반 민법 규제를 따라야 한다는 주장은 언뜻 설득력 있게 들린다. 그러나 이는 법인격의 성격과 민법의 기본 체계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민법 제38조는 행정법적 규정이다 서헌제 교수는 "민법 제38조의 법인설립취소는 민법에 규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실질은 헌법상 기본권을 제한하는 행정법적 규정"이라고 명시한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기본권 제한 규정이기 때문에, 설립취소 요건 해당 여부를 판단할 때는 헌법 제10조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에 내재하는 일반적 행동의 자유에 대한 침해 여부 및 과잉금지의 원칙 등을 엄격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도 이 점을 일관되게 확인해 왔다. 2014년, 2017년, 2023년의 잇따른 판결에서 대법원은 민법 제38조의 '공익을 해하는 행위'를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해당 법인의 소멸을 명하는 것이 공익 침해 상태를 제거하고 정당한 법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제재수단으로서 '긴요하게 요청되는 경우'여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일관된 입장이다. "민법 제38조의 법인설립취소는 민법에 규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실질은 헌법상 기본권을 제한하는 행정법적 규정이다." —서헌제 한국교회법학회장 법인도 기본권의 주체다 더욱이 법인격을 취득했다고 해서 헌법상 기본권 보호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서헌제 교수가 지적하듯, 단체의 기본권에 대해 통설과 판례는 "단체의 구성원과 독립해서 단체 자체의 기본권도 인정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1996년과 2002년 결정에서 이를 확인했다. 우리 헌법 제19조, 제20조 제1항, 제21조 제1항은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결사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보장한다. 종교적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공동의 목적을 위해 단체를 설립하고 법인으로 허가받아 활동하는 것은 이들 기본권의 내용에 포함된다. 법인격 취득이 이 보호를 소멸시키지 않는다. 민법은 사적 자치의 기본법이다 정종휴 교수는 보다 근본적인 지점을 짚는다. "민법은 사인(私人) 간의 이해조정의 기본법으로서 사적 자치, 사유재산권 보장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비영리법인의 감독, 해산, 재산몰수 등 행정적 제재를 내용으로 하는 개정법안은 기존의 민법 체제와는 맞지 않는다." 이것은 단순한 법기술적 문제가 아니다. 민법의 성격과 취지 자체에 관한 문제다. 정 교수는 민법을 '사회의 기본법(헌법, Constitution)'으로 규정하며, 민법 개정은 헌법 개정에 준할 만큼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기본법에 특정 정치적 목적을 가진 규제 조항을 삽입하는 것은, 그 목적이 아무리 정당해 보여도 법체계 전체를 왜곡하는 것이다. 3. '정상적 교회는 해산 위험이 없다'는 주장의 실상 진일교 목사의 두 번째 주요 논거는 개정안이 통일교·신천지 같은 반사회적 단체만을 겨냥하므로, 정상적인 교회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합리적으로 들리지만, 법률의 실제 작동 방식을 면밀히 살펴보면 치명적 결함을 가진 주장임이 드러난다. '정교분리 위반'이라는 불명확한 기준의 위험성 개정안 제38조 제1항 제5호는 법인설립 허가 취소 사유로 "헌법 제20조 제2항에서 정한 정교분리의 원칙 또는 공직선거법 등 관계 법령을 위반하여 선거, 정당 또는 후보자와 관련하여 조직적·체계적으로 정치활동에 조직적·반복적으로 개입하여 공익을 현저히 해한 때"를 명시하고 있다. 서헌제 교수는 이 조항의 명확성 원칙 위반 문제를 네 가지 차원에서 분석한다. 첫째, 행위 주체인 '법인'의 범위에서 '정치활동에 개입하는 구체적인 실행주체 범위가 불명확'하다. 둘째, '정교분리의 원칙'이라는 헌법상 추상적 개념이 구체적 상황에 적용되려면 법률로 구체화되어야 하는데, 이 조항은 그 해석권을 행정기관인 주무관청에 넘기고 있어 행정기관의 자의적 해석 가능성을 초래한다. 셋째, 공직선거법 등 관계 법령을 위반하지 않는 정치활동이라도 정교분리 원칙에 위반하는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 법인설립 허가 취소가 가능하게 되어 법인 및 그 구성원의 정치적 기본권이 침해될 수 있다. 넷째, 판단 주체를 주무관청으로 하는 것은 선거관리위원회나 법원이 전문적으로 해왔던 판단을 행정부에 넘김으로써 정권의 정치적 억압을 가능케 하는 법적 토대로 작용할 수 있다. "코에 걸면 코거리, 귀에 걸면 귀거리"의 자의적 해석·적용을 허용하는 불확정의 법문으로서 법률적용의 남용을 예정하는 악법이다." — 정종휴 전남대 로스쿨 명예교수 '정교분리'가 무엇인지 진일교 목사는 오해하고 있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정종휴 교수는 헌법 제20조 제2항의 '정교분리'가 실은 '국교분리(國敎分離)'이며, '종교와 국가의 분리', 즉 '국가의 종교적 중립성'을 뜻한다는 것을 상세히 논증한다. 이는 미국 연방대법원이 '교회와 국가의 분리(separation of church and state)'로 해석하는 것과 일치한다. 그런데 진일교 목사가 지지하는 개정안은 '정교분리'를 '종교의 정치 불간섭'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는 헌법학자들의 이해와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정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정교분리' 개념의 이러한 오독은 일제 잔재에서 비롯된 것이다. 제헌헌법의 '정교분리 규정'은 '대일본국헌법'의 정교분리제를 계승한 '일본국헌법' 제20조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Separation of state and religion'을 '정교분리'로 오역함으로써 생긴 해악이라는 것이다. 만약 '정교분리'가 '종교의 정치 불간섭'을 의미한다면, 어떤 정권이 들어서느냐에 따라 정치적 발언을 하는 목사, 사회 이슈에 입장을 표명하는 교단, 집회에서 정치적 견해를 표현하는 교회가 모두 이 조항에 의해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 진일교 목사가 '정상적인 교회는 위험이 없다'고 안심시키지만, 그것은 조항이 실제로 어떻게 운용될지에 대한 낙관적 가정일 뿐 법적 보장이 아니다. '조직적·체계적·반복적'이라는 요건도 모호하다 개정안은 '조직적·체계적으로 정치활동에 조직적·반복적으로 개입'이라는 요건을 두고 있다. 진일교 목사는 이 요건이 일반 교회를 보호한다고 주장하지만, 이 역시 불명확한 기준이다. 어느 수준의 정치 개입이 '조직적'인가? 교단 차원에서 특정 법안에 반대하는 집회를 여는 것은 해당하는가?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설교를 반복하는 것은? 교회가 교인들에게 특정 정당에 투표하도록 권고하는 것은? 이 모든 것이 주무관청의 자의적 판단에 달리게 된다. 서헌제 교수는 이 점을 지적하면서, 개별 교회 또는 교단이 통일교나 신천지처럼 조직적·체계적·반복적으로 정치인에게 헌금을 공여하거나 선거에 개입하지 않는 이상 막연히 정교분리 위반이라는 기준만으로 해산당할 위험성은 그다지 크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그 불확정 개념 자체의 헌법적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고 명시한다. 4. 재산 국고귀속 조항이 가져올 심각한 충격 진일교 목사의 글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은 부분이 있다. 개정안 제80조 제4항, 즉 법인이 제38조 제1항 제4호 또는 제5호에 해당하여 설립허가가 취소된 경우 잔여재산이 국고에 귀속된다는 조항이다. 이는 단순히 법인 해산의 문제가 아니다. 신도들의 헌금으로 이루어진 재산을 몰수한다 서헌제 교수는 "사이비 종교법인의 재산은, 비록 교주에 현혹되어 갈취당한 것이라도 기본적으로는 교인들의 헌금으로 조성된 교인들의 총유재산"이라고 명시한다. 이 재산을 피해 당사자인 교인들에게 우선 돌려주지 않고 국고로 귀속시키는 것은, 설령 대상이 반사회적 종교법인이라 하더라도 심각한 재산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 정종휴 교수는 더 직접적으로 이를 "성도들의 헌금으로 이루어진 교회 재산에 대한 무도한 재산권 침해"라고 표현한다. 현행 민법 제80조는 해산한 법인의 재산을 정관으로 지정한 자에게 귀속하거나 총회결의로 재산을 처분하도록 하고, 처분되지 않은 재산만을 최후로 국고에 귀속시키고 있다. 개정안은 이 자율권을 박탈하고 즉각 국고로 귀속시키도록 한다. 서헌제 교수는 "민법상 사적 자치, 헌법상 사유재산권 보장에 대한 중대한 예외 규정으로 이 법이 시행될 경우 법원이나 헌법재판소에서 그 위헌성 여부가 심하게 다투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한다. 국제 비교법적 관점에서도 흥미롭다. 일본의 종교법인법은 공익을 해하여 법인 해산을 명하는 경우에도 잔여재산의 국고귀속을 강제하지 않는다. 사이비 종교법인의 재산은 기본적으로 교인들의 헌금으로 조성된 총유재산이다. 몰수된 종교재산은 우선적으로 교인들이 입은 피해를 보전하는 데 사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형법상 범죄수익 몰수로도 충분하다 서헌제 교수는 반사회적 종교단체의 재산을 환수하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굳이 민법을 개정할 필요가 없다고 제안한다. "굳이 반사회적 종교단체를 해산하고 재산을 몰수하려면 형법상 범죄수익 몰수와 추징 규정에 추가하면 될 것이다." 이 경로를 통하면 사법부의 통제 아래 엄격한 요건을 충족한 경우에만 몰수가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훨씬 안전하다. 5. 주무관청의 광범위한 조사권 신설이 가져올 문제 진일교 목사의 글에서 또 하나 다루어지지 않은 것이 개정안 제37조 제2항 내지 제4항, 그리고 제38조의2이다. 이 조항들은 주무관청의 법인에 대한 조사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이다. 압수수색에 준하는 권한을 사전 영장 없이 부여한다 개정안 제37조 제2항은 주무관청이 ① 관계 서류·장부 등의 제출 명령, ② 소속 공무원의 법인 사무 및 재산 상황 검사, ③ 법인 대표자 또는 임직원에 대한 출석 및 진술 요구를 할 수 있도록 한다. 제38조의2는 이를 더 구체화하여 주무관청이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하면 법인의 사무소, 사업장 또는 그 밖의 장소에 출입하여 장부, 서류, 그 밖의 물건을 검사할 수 있도록 한다. 정종휴 교수는 이를 강하게 비판한다. "객관적 증거가 없어도 주무관청은 '의심'만으로 즉시 조사에 착수할 수 있다. 또 사법부의 통제 없이 행정청 판단만으로 강제 조사권이 발동된다. 헌법상의 영장주의를 위반한다." 사무소·사업장 강제 출입, 장부·서류·물건 검사, 관계인 질문이 모두 가능하여, 사전 영장 없는 압수수색에 준하는 강제력이 행사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박기준 변호사(법무법인 우암)도 "법원의 허가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압수수색 수준의 권한을 준 것이나 마찬가지라 문제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단순히 '통일교·신천지 같은 반사회적 단체'에만 적용될 가능성 문제가 아니다. 어떤 정권이든 이 권한을 사용하면 편의에 따라 어떤 교회든 조사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다. 주무관청은 수사기관이 아니다 정종휴 교수는 "법인의 대표자와 임원은 범죄자가 아니고, 주무관청은 수사기관이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경찰·검찰의 강제수사는 법원의 통제 아래 영장주의에 의해 제한되는데, 개정안은 이보다 낮은 통제 수준에서 주무관청이 이에 준하는 권한을 행사하게 하는 것이다. 서헌제 교수도 "자칫 사적 기관인 법인에 대한 정권의 정치적 억압을 가능케 하는 법적 토대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6. '민법 개정' 방식이 왜 잘못인가 진일교 목사는 개정안의 방식(민법 개정)이 왜 문제인지에 대해 전혀 다루지 않는다. 그러나 법학 전문가들은 수단의 문제를 목적의 정당성 못지않게 중요하게 본다. 민법은 일반 사인 관계의 기본법이다 서헌제 교수는 "민법은 사인(私人) 간의 이해조정의 기본법으로서 사적 자치, 사유재산권 보장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비영리법인의 감독, 해산, 재산몰수 등 행정적 제재를 내용으로 하는 개정법안은 기존의 민법 체제와는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정종휴 교수도 "민법은 일반 시민의 법이다"라는 대원칙을 강조하며, 개정안의 여러 조항이 '민법 조항으로 보기에 부끄러울 정도'라고 평가한다. 서헌제 교수는 교계의 검토 의견서에서 "사이비 종교단체의 반사회적 행위를 제재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면 그 방법은 기본법인 민법을 개정할 것이 아니라 가칭 「반사회적 종교법인의 해산에 관한 법률」과 같은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제시했다. 일본의 비교법적 사례 정종휴 교수가 제시하는 비교법적 관점도 중요하다. 일본은 2006년 민법 개정으로 법인 규정을 대폭 간소화하여 4개 조문만 남기고 나머지는 삭제했다. 대신 일반사단법인 및 재단법인법, 공익법인 인정법, 종교법인법 등 특별법으로 세부 사항을 규율한다. 종교법인의 해산도 별도의 종교법인법(제81조)에 의한 법원의 해산명령 절차를 통해 이루어진다. 서헌제 교수는 일본 통일교 해산 사례를 인용하면서 중요한 시사점을 지적한다. 일본 도쿄고등재판소가 2026년 3월 4일 통일교에 대한 해산명령 결정을 내렸지만, 이는 '정교유착' 때문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친 불법적 헌금갈취'라는 민법상 불법행위를 이유로 한 것이었다. 게다가 이 과정은 문부과학대신이 법원에 청구하고 법원이 결정을 내리는 사법적 통제 아래 진행되었다. 진일교 목사는 일본의 통일교 해산을 이 개정안의 정당성 근거로 암묵적으로 인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일본의 해산 절차는 이 개정안이 설계한 방식(주무관청의 행정처분)이 아닌 사법적 통제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논거로서의 일관성이 없다. 7. '교계 반발이 개신교를 이단과 동일시하게 만든다'는 주장의 문제 진일교 목사의 가장 자극적인 주장 중 하나는 교계의 반발이 오히려 개신교를 통일교·신천지와 동일시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사실의 층위와 규범의 층위를 혼동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자신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은 정당한 행위다 어떤 법안이 잘못된 것이라면 그것이 누구를 겨냥하든 반대하는 것은 정당하다. 개신교 교회들이 이 개정안에 반대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통일교·신천지처럼 행동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 법안의 설계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불명확한 '정교분리 위반' 개념, 주무관청의 광범위한 조사권, 사전 영장 없는 압수수색에 준하는 권한, 잔여재산 국고귀속 강제, 사법부 통제 부재 — 이 문제들은 대상이 반사회적 종교단체든 정통 교회든 동일하게 법치주의 관점에서 문제가 된다. 비유하자면, 한 범죄자를 체포하기 위해 경찰이 영장 없이 모든 집을 수색할 수 있는 법안을 만든다면, 그 법안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범죄자가 아님에도 반대하는 것이다. 그들의 반대가 그들을 범죄자와 동일시하게 만드는가? 그렇지 않다. 역사적으로 반복된 경고를 외면한다 심하보 목사(대광기총 총회장)의 성명서는 이 개정안을 '현대판 종교재판'으로 규정했다. 서헌제 교수도 역사적 경고를 인용한다. "중세의 종교재판은 이단을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시작되었지만, 결국 수많은 무고한 생명을 희생시켰다. 종교개혁 시대에도 이단 척결을 명분으로 국가 권력이 종교를 통제하면서 신앙의 자유는 심각하게 제한되었다.“ 어느 시대든, 어느 나라든 종교 탄압은 처음부터 '악한 종교를 처벌하겠다'는 명분으로 시작했다. 이단·사이비의 폐해가 실재하고 제재의 필요성이 인정된다 해도, 그 제재 방식이 법치주의와 사법적 통제의 원리를 무너뜨리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교계의 반발은 이 점을 우려하는 것이다. "종교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범죄를 처벌하는 것과 국가가 종교 자체를 규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국가는 종교를 판단할 권한이 없다. 다만 범죄를 처벌할 권한이 있을 뿐이다." — 서헌제 한국교회법학회장 8. '세금 혜택을 받으면 실정법을 따라야 한다'는 논거의 한계 진일교 목사는 비영리단체나 종교시설이 세금 감면 혜택을 받으므로 실정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논거는 부분적으로 타당하다. 그러나 이것이 이 특정 개정안을 지지하는 근거가 되는가? 준수해야 하는 '실정법'은 이미 존재한다 종교단체가 탈세를 하거나, 성범죄를 저지르거나, 사기를 치거나, 선거법을 위반하면 이미 현행법으로 처벌 받는다. 서헌제 교수는 현행 민법 제38조가 '공익을 해하는 행위'를 법인 설립취소 사유로 규정하고 있으며, 일본 통일교 사례처럼 불법적 헌금 갈취도 이 요건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고경환 목사도 "특검 과정에서 혐의를 조사하고 있는 신천지, 통일교와 같은 특정 단체의 불법 혹은 탈법 행위가 있다면, 이는 현행 법체계 또는 이를 강화하는 법안을 통해 충분히 조사하고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 개정안이 기존 법체계의 보완이 아니라, 불명확한 새 기준을 민법에 삽입하고 행정 권한을 대폭 강화함으로써 체계를 왜곡한다는 데 있다. '세금 혜택을 받으면 실정법을 따라야 한다'는 논거가 이 개정안의 구체적 문제들, 즉 불명확한 요건, 영장 없는 조사권, 잔여재산 몰수, 사법 통제 부재를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종교의 공적 기여를 인정해야 한다 정종휴 교수는 이와 관련하여 종교의 본질적 역할을 상기시킨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가정이나 국가와 같은 사회들은 인간에게 필수적인 것임을 인정한다. 그리스도교는 인간의 기본권과 공동선과 인간 구원에 필요한 경우에 경제와 사회 문제에 윤리적 판단을 내림으로써 개입한다." 종교의 사회적 역할은 세금 감면의 반대급부 이상이다. 종교는 국가가 대신할 수 없는 도덕 교육, 공동체 결속, 사회 봉사를 수행한다. 이 역할을 협박의 도구로 삼아서는 안 된다. 9. 진일교 목사의 글에서 빠진 것들 진일교 목사의 글을 분석할 때, 그가 명시적으로 주장하는 것 못지않게 그가 다루지 않은 것들이 중요하다. 개정안이 아닌 '특별법'으로 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대안 교계의 반대가 단순한 '반발'이 아니라 명확한 대안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진일교 목사는 다루지 않는다. 한교총 대표회장 김정석 목사는 "사이비 종교단체의 반사회적 행위를 제재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면 그 방법을 기본법인 민법을 개정할 것이 아니라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한다. 서헌제 교수도 가칭 「반사회적 종교법인의 해산에 관한 법률」 특별법의 구체적 방향을 다섯 가지로 제시한다. 첫째, 법 적용 대상 법인을 명확히 한정하여 정통 종교에까지 불리한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 둘째, 법인 해산 기준에 '정교분리'와 같은 포괄적이고 모호한 개념 사용을 자제함으로써 종교탄압 우려를 불식할 것. 셋째, 법인 해산 결정은 행정관청이 아니라 법원에 맡겨 사법적 통제에 따를 것. 넷째, 법인 해산 사유에 불법 헌금갈취, 신도에 대한 인권유린 등의 사유를 추가하여 사이비 종교의 피해를 방지할 것. 다섯째, 해산법인의 잔여재산은 불법 헌금의 희생이 된 신도들의 피해구제에 우선 사용할 것. 한국 법원의 경직된 해석도 문제다 서헌제 교수는 교계의 입장을 단순히 대변하지 않는다. 그는 코로나19 확산 과정에서 역학조사를 방해한 신천지 계열 HWPL의 설립취소에 제동을 건 한국 법원의 판결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이러한 경직적인 법해석을 통해 결과적으로 반사회적 종교법인의 법인격 남용을 용인한 법원 판결이 정교유착방지법안 제출의 빌미를 제공한 것이 아닌가 한다." 즉, 현행법의 엄격한 요건도 '현행법을 보다 완화해서 적용'하는 방향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진일교 목사는 이처럼 교계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균형 잡힌 입장, 즉 '반사회적 종교단체 제재'와 '종교의 자유 보호'를 함께 추구하는 대안을 언급하지 않은 채, 마치 교계 전체가 반사회적 종교단체를 두둔하는 것처럼 프레임을 설정한다. 법안 발의의 정치적 맥락 서헌제 교수와 정종휴 교수 모두 이 법안이 다수당인 민주당의 공론을 거친 바 없이 일부 의원들이 임의로 제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이재명 대통령이 2026년 1월 21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정교분리 원칙이 깨지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고 발언하면서 이 법안에 힘을 실어주었다는 점, 그리고 대통령의 발언 자체가 정교분리를 '종교의 정치 불간섭'으로 오용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된다. 진일교 목사의 글은 이러한 정치적 맥락을 전혀 다루지 않는다. 어떤 법안이든 그것이 입법 목적의 정당성을 갖추고 있는지, 발의 과정이 민주적 절차를 거쳤는지, 실제 집행권을 누가 갖게 되는지에 대한 분석이 법안 평가에 필수적인데, 이 모든 차원이 생략되어 있다. 10. 신학적 관점에서 본 이단·사이비 대응의 정도(正道) 진일교 목사의 글은 법적 논거뿐만 아니라 신학적 논거에서도 문제가 있다. 구병옥 교수(개신대학원대)는 이단·사이비 종교의 반사회성을 창조질서 원리와 진리·정직 윤리라는 성경적 틀로 분석하면서, 한국교회의 실천신학적 대응 방향을 제시한다. 이단·사이비 문제의 근본 해결은 교회의 내적 갱신에 있다 구병옥 교수는 신천지, JMS, 구원파, 만민중앙교회, 통일교 각각의 반사회적 사례를 창조질서 원리(인간 존엄, 가정, 교회)와 진리·정직 윤리라는 두 축으로 분석한 뒤, 이렇게 결론짓는다. "결국 이단·사이비 종교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외부적 규제보다 교회의 내적 갱신에 달려 있다. 교회가 진리 위에 굳게 서서 개인과 가정을 하나님이 의도하신 창조질서 원리에 맞도록 세워가고, 정직하고 건강한 공동체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역할을 감당할 때, 이단·사이비 종교는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진일교 목사가 지지하는 외부적 법적 규제만으로는 이단·사이비의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구병옥 교수가 제시하는 실천신학적 대응은 소그룹 공동체 제공, 신앙교육 강화(창조질서 원리와 진리·정직 윤리 교육, 교리 교육, 교회사 교육, 이단·사이비 소개 교육, 가정예배 회복), 상담과 회복 사역, 연합과 협력을 통한 대응이다. 법적 규제와 신앙 공동체 갱신은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 구병옥 교수는 "이단·사이비 종교의 반사회성에 대한 사회적 대응과 관련하여 종교 자유와 사회적 책임 사이의 긴장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이단·사이비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반사회적 행위에 대한 분별과 대응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대응은 종교단체 해산과 같은 포괄적 규제보다는 종교의 자유를 존중하면서 개별 집단과 개인의 범죄행위에 대해 정밀하게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힌다. 서헌제 교수도 예수님의 가라지 비유(마 13:28-30)를 인용하며 이 균형을 강조한다. "가라지를 제거하려다 곡식까지 뽑아버리는 일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단·사이비의 폐해는 단호히 처벌해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교분리와 종교의 자유라는 헌법적 토대를 흔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반사회적 사이비 종교의 폐해를 막는 일과 종교의 자유를 지키는 일은 서로 충돌하는 가치가 아니라, 함께 지켜야 할 두 축이다. 진일교 목사의 논거는 어디서 실패하는가 지금까지의 분석을 종합하면, 진일교 목사의 주장은 다음과 같은 핵심적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법인격을 가진 종교단체도 헌법상 기본권의 보호를 받는다는 점을 간과했다. 법인격 취득이 헌법적 보호를 소멸시키지 않으며, 민법 제38조는 행정법적 기본권 제한 규정이므로 엄격한 요건과 사법적 통제 아래서만 적용될 수 있다. 둘째, 개정안의 핵심 기준인 '정교분리 위반'이 헌법학적으로 불명확하고, 대통령의 발언을 포함한 법안 지지 논거들이 '정교분리'의 의미를 일제 잔재적 오해에 기초하여 왜곡하고 있다는 점을 다루지 않았다. 셋째, '정상적인 교회는 안전하다'는 주장은 법적 보장이 아니라 낙관적 가정에 불과하다. 불명확한 기준, 주무관청의 자의적 해석권, 사법적 통제 부재가 결합하면 어떤 교회든 표적이 될 수 있다. 넷째, 잔여재산 국고귀속 강제, 사전 영장 없는 조사권 등 개정안의 구체적 내용들이 가져올 재산권·영장주의 침해 문제를 전혀 다루지 않았다. 다섯째, 교계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명확한 대안, 즉 특별법 제정을 통한 사법적 통제 방식의 반사회적 종교단체 해산 제도를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교계의 반대를 단순한 기득권 옹호로 프레임화했다. 여섯째, 교계의 반발이 개신교를 이단과 동일시하게 만든다는 주장은 논리적 비약이다. 잘못된 법안에 반대하는 것은 그 법안이 겨냥하는 대상과 동일한 행동을 하기 때문이 아니다. ”종교를 법으로 직접 규제하려는 시도는 그 의도가 아무리 선하더라도 신중해야 한다. 불가피하게 입법이 필요하다면, 민법 개정이 아니라 특별법 제정을 통해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서헌제 한국교회법학회장 서헌제 교수의 마지막 경고는 이 기사의 결론이기도 하다. "국가 권력이 종교단체를 해산시키고 재산을 몰수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면, 그 권력은 언제든지 다른 종교와 교회에도 적용될 수 있다. 종교의 자유는 그렇게 무너진다." 좋은 목적이 나쁜 수단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반사회적 사이비 종교의 폐해를 막는 길은 반드시 법치주의와 사법적 통제라는 원칙 위에서 찾아야 한다. ※ 이 기사는 서헌제 한국교회법학회장(중앙대 명예교수·대학교회 목사), 정종휴 전남대 로스쿨 명예교수, 구병옥 개신대학원대학교 교수의 학술 발제문 및 연구 논문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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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02
  • "가라지 뽑다 곡식까지 뽑을라"… 교회법학회, 종교단체 해산법 집중 해부
    ▲한국교회법학회는 3월 32일 기독교회관에서 '반사회적 종교단체 해선의 법적 논의'를 주제로 제37회 학술세미나를 개최였다. "반사회적 사이비 규제는 필요하나, 민법 개정 아닌 특별법으로“ 한국교회법학회(학회장 서헌제)가 주최하는 제37회 학술세미나를 3월 30일 오후2시 기독교회관에서 개최하고 정부의 일명 '종교단체해산법'에 대한 강도 높은 학술세미나를 진행하였다. '반사회적 종교단체 해산의 법적 논의'를 주제로 열린 이번 세미나에는 법학자와 신학자, 목회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국회에 제출된 이른바 '정교유착방지법안'(민법 일부개정법률안)의 문제점을 심층적으로 논의했다. 발제자로는 한국교회법학회 학회장이자 중앙대 명예교수·대학교회 목사인 서헌제 박사, 개신대학원대학교 교수이자 한국실천신학회 이사장인 구병옥 박사, 전남대학교 로스쿨 명예교수이자 전 주교황청 대사를 지낸 정종휴 박사,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권철 박사가 참여했다. 지영준 변호사(법무법인 저스티스 대표), 황영복 목사(서울시교회와시청협의회 사무총장), 신동만 목사, 명재진 충남대 교수, 서영국 칼빈대 석좌교수, 송준영 목사 등이 토론자로 나섰다.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기조발제를 맡은 서헌제 학회장은 마태복음 13장의 가라지 비유를 이날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서 학회장은 이단·사이비 종교의 헌금 강요, 성범죄, 폭력과 인권 유린, 탈세 및 자금세탁 등 반사회적 범죄가 이미 오래된 구조적 문제임을 지적하면서도, "악을 제거하려는 열심이 오히려 더 큰 피해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최근 통일교와 신천지에 대한 특검 수사를 통해 이들이 얼마나 조직적으로 정치 영역에 침투해 왔는지가 드러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서 학회장은 "이제 반사회적 종교집단 문제는 더 이상 종교 내부의 이단 논쟁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정상화를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구조적 문제"라고 규정했다. 이어 그는 국회에 제출된 정교유착방지법안에 대해 교계의 반응이 "교회해산법", "일제의 포교규칙을 연상시키는 반민주적·전체주의적 악법"이라는 강한 반발부터 신중론까지 부정적 견해가 우세하다고 소개했다. 서 학회장은 "종교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범죄를 처벌하는 것과 국가가 종교 자체를 규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며, "국가는 종교를 판단할 권한이 없고 다만 범죄를 처벌할 권한이 있을 뿐"이라고 못박았다. 그는 "부득이 입법이 필요하다면 민법 개정이 아니라 가칭 '반사회적 종교법인의 해산에 관한 법률'과 같은 특별법 제정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이 법에는 불법 헌금 갈취, 인권 유린 등 구체적 해산 사유를 명시하고, 해산 결정의 주체도 행정부가 아닌 법원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서 학회장은 "반사회적 사이비 종교의 폐해를 막는 일과 종교의 자유를 지키는 일은 서로 충돌하는 가치가 아니라 오히려 함께 지켜야 할 두 축"이라고 강조하며 기조발제를 마쳤다. 신학적 시각에서 본 이단·사이비의 반사회성 제1주제 발제를 맡은 구병옥 교수(개신대학원대학교)는 이단·사이비 종교의 반사회성을 '창조질서 원리'와 '진리·정직 윤리'라는 두 가지 성경적 틀로 분석했다. 구 교수는 "2022년 기준 사이비 종교 인구가 교회 출석 개신교인의 8.2%, 약 31만~59만 명에 이른다"는 통계를 인용하며 문제의 심각성을 환기했다. 그는 이단·사이비 종교의 반사회적 양상을 네 가지 범주로 정리했다. 첫째, 가스라이팅과 세뇌를 통한 인간 존엄 훼손 및 인간성 파괴, 둘째, 집단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여 가정을 해체하는 가정 파괴, 셋째, 교회의 이름을 도용하여 정통 기독교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교회 파괴, 넷째, 교주를 신격화하고 거짓·기만을 반복하는 진리·정직 윤리의 붕괴가 그것이다. 구 교수는 신천지, JMS(기독교복음선교회), 구원파, 만민중앙교회, 통일교 등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분석한 뒤, 한국교회의 실천신학적 대응으로 건강한 소그룹 공동체 형성, 교리 및 교회사 교육 강화, 상담과 회복 사역의 전문화, 교회 간 연합과 협력을 제시했다. 그는 "이단·사이비에 대한 대응을 단순한 방어가 아니라 교회의 본질 회복이라는 신학적 과제로 재정립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최혁진 민법 개정안은 위헌적 악법"… 가톨릭 민법학자의 직격탄 제2주제는 가톨릭 민법학자 정종휴 교수(전남대 로스쿨 명예교수)가 맡아 최혁진 의원 대표발의 민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정 교수는 "이 개정안은 주무관청을 무소불위의 기관으로 만드는 위태로운 조항"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개정안이 법인의 대표자와 임원에 대한 출석 요구권까지 주무관청에 부여하는데, "법인의 대표자와 임원은 범죄자가 아니고 주무관청은 수사기관이 아니다"라며 "제안자의 법적 소양을 의심케 한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정 교수는 개정안의 정교분리 조항에 대해 "전대미문의 불확정 개념으로 점철된 열린 조항으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 자의적 해석을 예정하는 악법의 전형"이라고 규정했다. 특히 해산된 법인의 잔여재산을 국고에 귀속시키는 조항에 대해서는 "신도들의 헌금으로 이루어진 교회 재산에 대한 무도한 재산권 침해"라고 비판했다. 그는 결론적으로 "민법 개정이 아니라 특별법에 의해야 할 것"임을 강조하면서도, "공권력은 도덕 질서의 요구에 따라야 하며, 옳지 못한 법률은 양심을 구속하지 못한다"는 가톨릭 사회교리를 인용해 법의 정당성 문제를 짚었다. 일본 통일교 해산 결정의 시사점 제3주제 발제를 담당한 권철 교수(성균관대 법전원)는 지난 2026년 3월 4일 일본 도쿄고등법원이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구 통일교)에 대해 해산명령 결정을 내린 사건을 분석했다. 권 교수는 이번 일본 통일교 해산의 결정적 계기가 "아베 전 총리 암살"이었음을 지적하며, 그 과정에서 드러난 장기간의 고액 헌금 강요와 가정파탄이 해산 사유의 핵심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 통일교 해산은 정교분리 위반이나 선거 개입이 아니라 불법적 헌금 갈취라는 민법상 불법행위를 이유로 한 것"이라는 점에서, 현재 한국에서 제기되는 정교유착방지법안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또한 통일교가 자민당 장기 집권 시절 보수 정치권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는 정치적 배경은 이번 해산 결정에서 전혀 논점이 되지 않았다는 점도 흥미롭게 짚었다. 권 교수는 한국에 대한 시사점으로 1958년 민법 제정 당시의 비영리법인 규정만으로는 21세기 한국 사회의 비영리단체를 제대로 규율할 수 없다며, 한국형 종교단체 법제 정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교회법학회'를 중심으로, 종교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면서 정통 종교의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K-종교단체 법제'를 구축하는 건설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세미나 진행에 앞서 예배를 진행하는 모습. 이날 설교는 송준영 목사가 맡았다. 한편 이단·사이비 종교의 반사회성을 단순한 교리 오류로 볼 것이 아니라, 인간과 공동체를 파괴하는 '구조적 악'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신학적 분석이 제기돼 과심을 끌었다. 칼빈대학교 석좌교수이자 고신총회 이단대책연구소장, 한국장로교총연합회 이단대책위원장인 서영국 교수는 최근 열린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논문에 대한 토론문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국가 차원의 제도적 대응을 강력히 촉구했다. 창조질서 파괴·진리 붕괴… 이단 문제의 신학적 재조명 서 교수는 이번 토론에서 이단·사이비 종교의 반사회성을 '창조질서 원리'와 '진리·정직 윤리'라는 신학적 틀로 분석한 발제의 학문적 의의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기존 이단 연구가 주로 교리 비판에 집중된 것과 달리, 이 연구는 인간·가정·교회라는 창조질서의 구조적 파괴라는 관점에서 문제를 재조명했다"면서 "이단을 단순한 신학적 오류가 아닌 공동체를 파괴하는 총체적 현상으로 이해하게 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이단·사이비 종교를 단순한 교리 왜곡이 아닌 '거짓의 구조화'로 규정한 발제의 시각에 적극 동의하면서, 성경이 거짓을 단순한 윤리 문제가 아니라 "사탄의 본질적 속성과 연결된 존재론적 문제"(요 8:44)로 규정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종교 자유 뒤에 숨은 착취 구조… 국가가 방치해선 안 돼" 서 교수는 이날 토론에서 특히 국가의 역할 문제를 강하게 제기했다. 그는 "반사회적 단체를 종교의 범주에 두니 국가와 사회가 어떤 회복 시스템도 구성할 수 없다"고 지적하며, "종교의 자유라는 이름 아래 성 착취, 이혼 조장, 재산 사실상 횡령이 일상화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구체적인 대안으로는 프랑스와 일본 수준의 반사이비 관련 법안 입법, 국무총리실 또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상담지원센터 설치, 실제 피해 실태 파악을 위한 정부 기구 운영을 제안했다. 서 교수는 "현재 개인 전문가의 상담만으로는 이단에 빠진 100명 중 1명도 회복시키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제도적 뒷받침의 시급성을 역설했다. 또한 중국 '전능신교' 신도들이 한국에 집단 거주하며 난민 신청을 악용해 강제 퇴거를 피하고 있는 사례를 언급하며, "대한민국이 반사회적 종교의 온상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경고했다. 교회·신학계도 통합적 대응 나서야 교회 내부 대응과 관련해 서 교수는 계시론과 교회론에 대한 교리 교육 강화, 이단 피해자를 위한 체계적 상담과 회복 사역, 개혁주의 변증학 강화를 과제로 제시했다. 그는 "이단 문제는 신학, 목회, 사회 전 영역에서 통합적으로 다뤄져야 한다"고 강조하며, "단순한 교리 문제가 아니라 인간과 공동체, 그리고 진리 자체를 붕괴시키는 구조적 악에 대한 대응"임을 분명히 했다. 이날 세미나는 이단·사이비 종교의 반사회적 폐해에 대한 법적·신학적 대응이 시급하다는 데 발제자와 토론자 모두 공감하면서도, 그 방법론에 있어서는 민법 개정이라는 손쉬운 길 대신 종교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를 손상시키지 않는 신중한 입법이 요구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한국교회법학회는 이미 한교총의 의뢰로 해당 법안에 대한 검토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한 바 있으며, 이번 세미나를 통해 교계의 입장을 보다 정교하게 다듬었다. 관련 기사 : '진일교 목사 민법개정안 옹호론' 어디서 어떻게 문제가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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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31
  • "핵 9·11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 美·이스라엘 군사행동 정당성 주장
    The Daily Signal 기사 화면 캡처 "핵무장 이란, 더 이상 가정이 아닌 현실적 위협" 미국 보수 성향 매체 The Daily Signal에 실린 밥 키프니(Bob Kiffney)의 기고문이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최근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對)이란 군사행동을 "핵 재앙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규정하며, 이란의 핵무장이 세계 안보에 미치는 위협을 강하게 제기했다. 키프니는 2001년 9·11 테러를 소환했다. 당시 약 3,000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만약 같은 공격이 핵무기로 이루어졌다면 피해는 수십만 명에 달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맨해튼에서만 최대 80만 명이 즉사할 수 있다"는 가정을 제시하며, 이번 사안이 단순한 군사적 충돌이 아니라 "문명적 재앙 수준의 위협"임을 강조했다. 그는 기고문에서 이번 군사 충돌을 새로운 전쟁의 시작이 아니라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지속되어 온 갈등의 종결 단계"로 해석했다. 이란은 혁명 직후부터 미국을 "위대한 사탄"으로 규정하고, 헤즈볼라·하마스 등 대리세력을 통해 끊임없이 적대 행위를 이어왔다. 1983년 베이루트 미군 막사 폭탄테러, 1996년 코바르 타워 사건, 그리고 2023년 10월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까지, 일련의 사건들은 "미국과의 적대가 이란의 일관된 국가 정책"임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키프니는 "이란은 단순한 국가가 아니라 이념적 전쟁을 수행하는 체제"라고 규정하며, 외교적 해결 가능성에 대해 깊은 회의를 드러냈다. 핵 프로그램 "이미 임계점 도달" 기고문에서 가장 강조하여 지적한 것은 이란 핵개발의 '임박성'이다. 키프니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이란은 다수의 핵폭탄을 제조할 수 있는 고농축 우라늄을 이미 확보했으며, 실제 핵무기 제조까지 걸리는 시간은 며칠 또는 몇 주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국제 사찰 거부, 고급 원심분리기 기술 확보, 탄도미사일 능력 보유까지 더해지며, 이란은 사실상 핵무기 보유 직전 단계에 도달해 있다는 평가다. 2026년 제네바 협상에서 이란은 농축도 60%의 우라늄 460kg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이는 핵무기 약 11개를 만들 수 있는 분량에 해당한다.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단행된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에 대해, 키프니는 "확전이 아니라 자위적 대응"이라고 주장했다. 나탄즈, 포르도, 이스파한 핵시설을 타격한 '미드나이트 해머 작전'은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약화시키고 미사일·드론 능력을 무력화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고 설명된다. 키프니는 "이제 갈등을 관리할 수 있는 단계는 지났으며, 종결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단언했다. 기고문이 특히 주목하는 것은 이란 체제의 종교적 성격이다. "종교적 사명을 수행한다고 믿는 집단은 합리적 억제 논리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냉전 시기 핵억지 전략은 상대방의 합리적 판단을 전제로 했지만, 이란에는 그 전제 자체가 통하지 않을 수 있다는 논리다. "핵무기가 억지력이 아니라 '신적 도구'로 사용될 위험이 있다"는 표현은, 이란을 일반적인 국가와 다른 차원에서 바라보는 인식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키프니는 이번 작전의 목적이 정권 교체 자체에 있지 않으며, "핵 9·11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분명히 밝힌다. 이란이 핵을 보유한 상태에서 발생할 수 있는 피해는 9·11과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논쟁은 계속된다 물론 이러한 주장에 대한 반론도 적지 않다. 국제사회 일각에서는 "핵 개발 의혹만으로 선제 군사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하며, 국제법적 정당성과 민간인 피해 가능성을 우려한다. 반면 지지하는 측은 "핵을 보유한 이후에는 대응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며, 사전 차단이 유일한 현실적 선택이었다고 평가한다. 이번 기고문은 단순한 시사 분석을 넘어, 미국 보수 진영의 전략적 세계관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란을 '억제 가능한 국가'가 아닌 '종교적 전쟁 체제'로 규정하는 시각이 군사행동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핵심 전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 논쟁의 중심에는 하나의 근본적인 물음이 있다. 이란을 외교의 대상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제거해야 할 위협으로 볼 것인가. 그 인식의 차이가 정책 전체를 가른다. 이번 기고문은 그 갈림길에서 한쪽 입장을 분명하게 선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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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31
  • '이즘'(ism)에 물든 그리스도인들, 복음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한국 교회는 복음이 아닌 이념으로 골이 깊어지고 있다. AI제공 균열의 현장 — 정치가 교회를 삼킬 때 대한민국은 지금 깊은 균열 속에 있다. 정치적 사건 하나가 사회 전체를 좌와 우로 갈라놓고, 사람들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재편하고 있다. 어제까지 이웃이었던 사람이 오늘은 적진에 선 것처럼 보인다. 같은 교회에서 나란히 예배드리던 성도가 예배당 밖에서는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한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2026년의 현실이다. 문제는 그 균열이 교회 안까지 깊숙이 들어왔다는 데 있다. 교회는 본래 세상의 분열을 치유하고 하나 되게 하는 공동체여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오히려 세상과 다르지 않다. 아니, 때로는 더 격렬하게 갈라져 있다. 어떤 교회에서는 특정 정치적 입장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설교가 울려 퍼지고, 다른 입장을 가진 성도는 조용히 교회를 떠난다. 누군가를 지지하면 곧바로 '극우'라는 낙인이, 다른 누군가를 옹호하면 '종북 좌파'라는 딱지가 붙는다. 그 낙인은 단순한 정치적 구분을 훌쩍 넘어 도덕적 판단, 심지어 신앙의 진위를 따지는 기준이 되어버렸다.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하고, 정죄하며, 관계를 끊는 모습은 세상의 정치 집회에서나 볼 법한 장면이지,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에서 결코 자연스러운 풍경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 교회의 상당 부분에서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반드시 멈추고 질문해야 한다. 복음은 어디에 있는가? 이념이 복음의 자리를 빼앗을 때 복음은 단지 개인의 위안을 위한 메시지가 아니다. 복음은 인간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할 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무는 능력이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셨다"(엡 2:14)고 선언했다.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수천 년 된 적대감을 십자가 하나가 무너뜨렸다는 이 선언은, 단순한 신학적 명제가 아니라 살아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교회 안의 이 분열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많은 경우, 우리는 복음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이념을 더 신뢰하는 것 같다. 복음을 고백하지만 판단의 기준은 정치적 진영이다. 복음은 우리의 신앙 언어로만 남아 있고, 실제 삶의 기준은 '이즘(ism)'이 되어버렸다. 보수적 정치 이념이든, 진보적 사회 의제든, 그것이 복음의 자리를 차지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우상숭배의 문턱에 들어선 것이다. 칼빈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간의 마음은 본래 '우상을 만들어내는 공장'이다. 그 공장이 이제는 이념이라는 우상을 빚어내고 있다. 이념이 복음을 대체하는 과정은 대개 조용하고 점진적이다. 처음에는 시대적 문제에 대한 정당한 관심으로 시작한다. 사회 정의에 대한 관심, 국가 안보에 대한 우려, 역사적 부정의에 대한 분노. 이것들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 관심들이 복음의 빛 아래서 비판적으로 검토되지 않고, 어느새 복음 위에 군림하게 될 때 발생한다. 특정 정치적 운동이나 이념을 하나님의 뜻과 동일시하는 순간, 우리는 복음을 이념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역사는 이 위험을 여러 차례 증언하고 있다. 19세기 독일 자유주의 신학은 민족주의라는 이념과 복음을 혼합했고, 그 결과는 나치즘에 협력한 '독일 기독교인' 운동이었다. 칼 바르트는 바로 이 혼합에 맞서 바르멘 선언을 기초했다. 이념·국가·지도자가 복음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이 칼 바르트가 주장한 바르멘 선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AI 제공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들어야 할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이다"라는 선언은, 어떤 이념도, 어떤 국가도, 어떤 지도자도 복음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다는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선언은 80여 년이 지난 오늘, 대한민국 교회를 향해서도 동일하게 울려야 한다. 우리는 무엇에 사로잡혀 있는가 이념(ism)이 복음을 대체할 때 나타나는 증상들이 있다. 첫째는 적아(敵我) 구분의 절대화다. 복음 안에서 우리의 정체성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태어난 존재로 규정된다. 그러나 이념이 정체성의 기반이 될 때, 우리는 나와 같은 입장을 가진 자를 '우리'로, 다른 입장을 가진 자를 '그들'로 구분하기 시작한다. 이 구분은 점점 날카로워지고, 마침내 '그들'은 악한 편에 선 자로 규정된다. 같은 성령 안에서 하나 된 형제자매가 정치적 적군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둘째는 복음의 선택적 사용이다. 이념에 물든 신자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정당화하는 성경 본문은 열정적으로 인용하지만, 그 입장에 불편한 본문은 무시하거나 재해석한다. 권력자의 권위를 강조하는 로마서 13장은 환영하지만, 가난한 자를 억압하는 자들을 향한 야고보서의 경고는 외면한다. 혹은 반대로, 예언자적 저항 전통은 열광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국가 권위에 대한 존중은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치부한다. 성경 전체의 권위 앞에 겸손히 서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자신의 이념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셋째는 구원의 공동체의 붕괴다. 교회는 본래 죄 사함을 받은 자들의 공동체, 은혜로 하나 된 자들의 모임이다. 그러나 이념이 중심을 차지하면, 교회는 이념적 동지들의 집합체로 변질된다. 같은 이념을 가진 자들만이 진정한 성도로 인정되고, 다른 생각을 가진 자들은 암묵적으로 혹은 노골적으로 배제된다. 이것은 복음이 선포하는 교회가 아니다. 복음의 교회는 바리새인과 세리가, 유대인과 헬라인이, 종과 자유인이 함께 앉는 곳이다. 넷째는 분노의 정당화다. 이념이 우상이 될 때, 그 이념을 위한 분노는 '의로운 분노'로 포장된다. 자신의 진영이 옳고 상대가 그르다는 확신이 강해질수록, 분노는 더 격렬해지고 더 정당화된다. 그러나 야고보는 경고한다.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약 1:20). 분노가 이념에 의해 연료를 공급받는 한, 그것은 아무리 종교적 언어로 포장되어도 하나님의 일을 이루지 못한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교회의 공적 실패로 이어진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셨다. 소금은 적은 양으로도 부패를 막는다. 바닷물의 3.5% 염분이 거대한 바다를 썩지 않게 하듯이, 교회는 사회를 지키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이 비유가 중요한 이유는, 소금이 작동하는 방식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데 있다. 소금은 스스로를 주장하지 않는다. 소금은 조용히 녹아 들어가 음식이 썩지 않게 한다. 빛이 스스로를 드러낼 때 소금은 자신을 감추면서 세상을 보존한다. 그런데 오늘날의 현실은 정반대다. 교회가 많아졌음에도 사회는 더 혼탁해졌다. 성도의 숫자가 늘었음에도 부패는 줄어들지 않았다. 이는 단순히 외부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 내부의 영적 상태를 드러내는 징후다. 예수께서 이미 경고하셨다.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 5:13). 맛을 잃은 소금은 더 이상 소금이 아니다. 보존의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교회가 이념에 물들 때 소금은 그 맛을 잃는다. 이념에 물든 교회는 세상의 갈등을 중재하고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갈등을 증폭시키고 재생산한다. 정치적 집회의 언어가 설교단에서 울려 퍼지고, 예배당이 특정 정당의 지지 기반이 되며, 목사가 정치적 선동가로 전락하는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이 상황에서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향해 묻는다. "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 물음 앞에 우리는 부끄러울 뿐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상태가 지속될수록 복음 자체가 무기력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존재함에도 사회가 점점 혼란스러워진다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묻는다. 기독교가 선포하는 복음이 정말로 능력이 있는가? 그리스도가 정말로 사람을 변화시키는가? 교회가 사회의 부패를 막지 못하고 오히려 분열을 심화시키고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영향력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 이유의 문제다. 교회가 왜 거기 있어야 하는지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예수는 어느 편에 서 계셨는가 흔히 사람들은 예수를 자신의 이념적 편으로 끌어당기려 한다. 보수는 질서와 전통을 강조한 예수를, 진보는 가난한 자들의 편에 선 예수를 전유하려 한다. 그러나 성경의 예수는 어느 진영의 포획도 거부하신다. 그분은 헤롯에게도, 빌라도에게도, 바리새인에게도, 젤롯 당원에게도 환원되지 않는다. 예수는 인간의 모든 이념 위에 서신 분이다.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 앞에서 칼을 든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의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라는 여호수아의 질문에 그는 대답했다.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이제 왔느니라"(수 5:13-14). 그분은 어느 편에 속한 것이 아니었다. 그분은 모든 편 위에 계신 분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도 마찬가지다. 복음은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니다. 복음은 하나님 나라의 질서이며, 인간의 모든 이념을 상대화하는 절대 기준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크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도 입장을 가질 수 있고, 때로는 가져야 한다. 그러나 그 입장은 항상 복음에 의해 비판적으로 검토되어야 하며, 자신의 입장이 하나님의 절대적 뜻과 동일시되어서는 안 된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지도자가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자라는 확신은, 예언자적 비판 의식을 마비시키는 가장 위험한 함정이다. 다윗을 사랑하셨지만 나단을 보내 그의 죄를 책망하신 하나님은, 어떤 정치 세력도 신성화하지 않으신다. 복음의 정치적 함의는 모든 이념을 초월하면서도 구체적인 삶에 깊이 관여한다. 복음은 가난한 자를 착취하는 경제 구조에 침묵하지 않는다. 동시에 복음은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과 생명의 질서를 훼손하는 사회 의제에도 타협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관심은 어느 특정 정당의 강령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온전한 복음 안에서 동시에 붙들려야 한다. 복음의 통전성(integrity)을 파괴하는 것이 바로 이념화의 본질이다. 연합의 신학, 하나 됨은 어디서 오는가 결국 문제의 핵심은 이것이다. 복음이 우리의 중심에 있는가, 아니면 이념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가? 복음이 중심에 있다면, 우리는 서로를 적으로 볼 수 없다. 생각이 다를 수는 있지만, 그 다름이 관계를 끊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의 정체성은 정치적 입장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연합은 동일한 생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생명에서 온다. 이것은 중요한 구분이다. 동일한 생각을 가진 자들의 연합은 이념적 동지 관계요, 클럽이지 교회가 아니다. 교회의 연합은 그리스도의 몸에 함께 속해 있다는 존재론적 사실에 근거한다. 바울이 "한 몸과 한 성령 ...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엡 4:4-5)라고 선언했을 때, 그는 신자들의 생각이나 입장이 모두 같다고 말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모두 같은 생명에 속해 있다고 말한 것이다. 이 연합은 이견(異見)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이견을 품을 수 있는 더 큰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복음 안에서의 연합은 모든 의견이 같아진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의견이 다를 때에도 서로를 형제자매로 대하고, 상대의 신앙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으며, 함께 말씀 앞에 겸손히 서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바울이 로마서 14-15장에서 가르친 '강한 자와 약한 자'의 윤리다. 의견의 차이가 관계의 단절이 아니라, 서로를 세워주는 섬김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진리에 대한 무관심이나 이른바 '관용주의'와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복음 안에서의 연합은 핵심 진리에 대한 타협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부활의 역사성, 성경의 권위 — 이 핵심 교리들에 대해서는 분명한 경계가 있다. 문제는 이 핵심 교리들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입장이나 이념적 차이를 핵심 교리와 동일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있다. '나와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가진 자는 진정한 신자가 아니다'라는 판단이 바로 그것이다. 머리된 그리스의 몸으로 교회의 항상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AI 제공 복음으로의 회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러므로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논쟁이 아니다. 더 강한 주장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복음으로의 회귀다. 복음이 다시 중심에 서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리의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 십자가 앞에서 우리는 모두 은혜로 하나 된 존재다. 그분이 우리의 머리이며, 우리는 한 몸으로 존재한다. 이 인식이 회복될 때에만 진정한 연합이 가능하다. 복음으로의 회귀는 첫째로 설교단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목사는 성도들에게 복음을 먹여야 하는 자다. 정치적 논평을 제공하는 자가 아니다. 물론 설교는 현실의 삶에 적용되어야 하고, 사회적 불의 앞에 침묵해서는 안 된다. 건전한 논의를 성숙하게 이끌어갈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 적용은 항상 복음에서 출발하여 복음으로 돌아오는 것이어야 한다. 이념이 설교의 중심이 되는 순간, 그 설교단은 더 이상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자리가 아니다. 둘째로, 성도 각 개인이 자신의 이념적 편향을 인식하고 복음의 빛 아래 겸손히 검토하는 영적 훈련이 필요하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자신의 이념적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그 렌즈의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요 16:13)는 약속은, 우리가 자신의 편견을 성령 앞에 내어놓을 때 이루어진다. 정기적으로 '나는 지금 복음을 믿고 있는가, 아니면 이념을 믿고 있는가?'를 자문하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영적 점검이다. 셋째로, 교회 공동체가 정치적으로 다양한 성도들이 함께 말씀 앞에 서는 연습을 의도적으로 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다양성을 위한 다양성이 아니다. 나와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가진 형제자매를 통해, 내가 복음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이념이었던 것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를 통해 거울을 보게 된다. 그 불편한 거울을 피하지 않는 것이 성숙한 신앙이다. 넷째로, 교회는 사회의 분열을 치유하는 구체적인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이것은 정치적 입장의 차이를 무시하거나 모든 의견을 동등하게 취급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적대적인 두 진영 사이에 서서, 대화의 자리를 만들고, 서로를 인격체로 대하는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다. 교회가 갈등의 도구가 아닌 화해의 도구가 될 때, 비로소 세상은 복음의 능력을 보게 된다. 복음은 여전히 강하다 지금 대한민국의 혼란은 단지 정치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영적인 문제이며, 교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교회가 다시 복음으로 돌아갈 때, 비로소 사회도 회복의 길을 찾을 수 있다. 역사는 이를 증언한다. 18세기 영국은 혁명 직전의 사회 균열을 겪고 있었다. 그 균열을 막은 것은 존 웨슬리가 이끈 복음주의 부흥 운동이었다. 그 부흥은 노예제 폐지, 노동 환경 개선, 교도소 개혁이라는 구체적인 사회 변화로 이어졌다. 복음이 살아 역사할 때, 교회는 진정으로 세상의 소금이 된다. 복음은 여전히 강하다.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복음은 원수를 사랑하게 하고, 분열된 자들을 하나 되게 하며, 절망 중에 소망을 심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복음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중심에 두고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복음이 우리의 가장 깊은 정체성이 될 때 — 정치적 입장이나 민족적 자긍심이나 계층적 이해관계보다 더 근본적인 정체성 — 비로소 우리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연합과 화해를 경험하게 된다. 한국 교회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세상의 이념적 싸움에 끌려다니며 그 갈등의 일부가 될 것인가, 아니면 복음으로 무장한 화해와 변화의 공동체로 서 있을 것인가. 이 선택은 거창한 교회 정치나 제도적 결정이 아니라, 매일 매일 개별 신자의 삶 속에서 이루어진다. 오늘 내가 SNS에서 어떤 말을 하는지, 정치적으로 다른 생각을 가진 동료를 어떻게 대하는지, 설교를 들을 때 그것이 복음인지 이념인지를 분별하려고 노력하는지 — 이 작은 선택들이 모여 한국 교회의 얼굴을 만들어간다. 이념의 편에 설 것인가, 아니면 복음의 자리로 돌아갈 것인가. 그 선택이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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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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