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영리법인 해산 가능케 한 민법 개정안, ‘공익’의 이름으로 종교·시민사회 겨누나
- ‘위법 행위 처벌’ 넘어선 ‘공동체 소거’, 민주주의 공론장 위축시키는 ‘독소 조항’ 논란
[기획/진단] 22대 국회에서 논의 중인 민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종교계와 시민사회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법안은 ‘법인격 남용 방지’와 ‘헌법 질서 수호’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으나, 그 실질을 들여다보면 특정 단체의 존재 자체를 지워버릴 수 있는 강력한 ‘해산권’을 행정부에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법 행위가 있다면 법에 따라 처벌하면 될 일이지, 왜 공동체의 존립 근거를 통째로 박탈하려 하느냐는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존재의 소거: 행위 처벌을 넘어선 법적 사형선고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주무관청이 비영리법인(종교·시민단체 포함)의 설립 허가를 취소할 수 있는 근거를 대폭 확장한 데 있다.
법안에 따르면 주무관청은 특정 법인이 ▲정교분리 원칙 위반 ▲선거·정당·후보자와 관련한 ‘조직적·반복적 정치 개입’ ▲‘공익을 현저히 해한 때’에 해당한다고 판단할 경우 설립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형사 처벌이나 과태료 같은 행정 제재를 넘어, 법인이 쌓아온 공동체의 역사와 기반을 일시에 소멸시키는 조치다.
특히 위법 행위에 대한 명확한 사법적 판단이 내려지기 전이라도 행정권의 자의적 해석에 의해 해산권이 발동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이는 법치의 강화를 넘어, 국가가 민간 단체의 생사여탈권을 쥐는 구조로 흐를 위험이 크다.
헌법 제20조의 위기: 종교의 자유는 ‘내면’에만 갇혀야 하는가
대한민국 헌법 제20조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마음속 신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표현, 설교, 집단적 선언, 그리고 사회적 실천이라는 공적 영역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헌법재판소 역시 종교의 자유가 공적 영역에서도 보호받아야 한다는 판례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개정안은 종교를 철저히 사적 영역으로 유폐시키려는 의도를 내비치고 있다. 법안의 논리는 “종교는 개인의 내면에만 머물러야 하며, 조직적으로 공적 사안에 목소리를 내면 해산될 수 있다”는 위협으로 비칠 수 있다. 이는 종교의 자유를 국가가 ‘허가한 범위 내에서의 침묵’으로 전락시키는 일이다. 신앙에 기초한 사회적 발언이 ‘정치 개입’으로 간주되어 단체의 존립을 위협받게 된다면, 이는 헌법상 기본권에 대한 본질적 침해로 볼 수밖에 없다.
정교분리의 왜곡: 권력 분리의 안전장치가 발언 통제의 도구로
정교분리 원칙의 본질은 국가 권력이 특정 종교를 이용하거나 억압하지 못하도록 하고, 종교가 국가 권력을 직접 행사하지 못하게 하는 ‘상호 간섭 금지’에 있다. 즉, 국가로부터 종교의 자율성을 지켜내기 위한 안전장치였다.
그러나 개정안은 이를 ‘종교단체의 정치적 의견 표명 금지’라는 프레임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종교단체가 특정 사안에 대해 조직적으로 의견을 내는 행위 자체를 정교분리 위반으로 보는 것은, 이 원칙을 권력 분리의 원칙이 아닌 ‘발언 통제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처사다. 인류 역사상 노예제 폐지나 민주화 운동 등 수많은 인권 진보가 종교의 공적 발언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을 상기할 때, 이 법안의 논리는 역사의 퇴보를 불러올 수 있다.
‘공익’이라는 모호한 칼날: 자기 검열과 위축 효과의 서막
법안에서 가장 치명적인 독소 조항으로 꼽히는 것은 **‘공익을 현저히 해한 때’**라는 문구다. 무엇이 공익인지, 어느 정도가 ‘현저한’ 수준인지에 대한 객관적 기준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법률은 명확해야 하며, 국민이 자신의 행위 결과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명확성의 원칙’은 법치주의의 기본이다. 그러나 이처럼 모호한 문구는 정권의 성향이나 행정부의 입맛에 따라 얼마든지 확장 해석될 수 있다. 결국 단체들은 “해산당할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스스로 입을 닫는 **‘위축 효과(chilling effect)’**를 겪게 될 것이며, 이는 법안이 시행되는 순간부터 민주주의의 근간인 공론장을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해외 사례와 대조: 민주적 모델인가, 통제적 모델인가
민주주의 선진국인 독일이나 프랑스 역시 단체 해산 제도를 두고 있지만, 그 적용 기준은 극도로 엄격하다. 헌정 질서를 파괴하려는 폭력적 전복 시도나 테러 연계가 명백한 경우에 한해, 사법부의 엄격한 판단을 거쳐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된다. 단순히 정치적 발언이나 이념적 주장만으로 종교·시민단체를 해산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반면, 정치적 발언을 빌미로 종교 활동을 제한하고 해산을 명하는 구조는 오히려 중국식 통제 모델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가 종교를 ‘관리’하고 허가된 활동만 허용하는 방식은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 가치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통제 중심의 비영리법인을 강제하는 법안은 종교탄압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사진은 포괄적차별법과 관련한 반대집회 모습
해산의 문을 여는 순간, 헌법의 방파제는 무너진다
역사는 증언한다. ‘공익’을 명분으로 휘두른 해산권은 언제나 가장 비판적인 소수에게 먼저 향했으며, 그 문이 한 번 열리면 결국 사회 전체의 자유가 잠식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특정 종교나 정파의 이해관계를 넘어선 ‘헌법적 이성’이다. 이 법안은 단순히 특정 단체를 겨냥한 칼날이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헌정 질서의 토대를 묻는 질문이다. 국가가 공동체를 합법적으로 말소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되는 순간, 우리가 누려온 자유의 공간은 돌이킬 수 없이 축소될 것이다. 이제는 감정이 아닌 법과 헌법의 언어로 이 입법 폭주를 멈추고 공적 이성을 회복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