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19(일)
 
  • 『한국의 사상 정세와 새 공화주의』을 읽고― 민주공화국의 본질을 다시 묻는다

칼럼/양봉식 목사(길과생명연구소 소장)

 

내 손에 들어온 『한국의 사상 정세와 새 공화주의』를 읽고 느낀 바를 적어보고자 한다. 권력이 새롭게 시작되면서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변함없이 이재명 정부가 잘하고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겉표면에 뜬 기름을 보고 말할 뿐, 다른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는 이들의 목소리이다. 더구나 이재명 정부가 추구하는 것을 지지차원에서 쓴 논리적인 책처럼 보여서 좀더 상세하게 읽어보고 그것을 나누려고 한다.

 

이재명 정부가 내세운 ‘국민주권정부’라는 구호는 듣기에 참 그럴듯하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이라는 비전도, “국민이 하나 되는 정치”라는 목표도 감성적으로는 호소력이 있다.

 

그러나 구호와 현실 사이의 간극은 여전히 깊다. 국민이 주인이라면 권력은 어떻게 나뉘고, 책임은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가. ‘하나 됨’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는가. 여기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 없다는 점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통합의 언어가 아니라 민주공화국의 원리 자체를 다시 성찰하는 철학적 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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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주의, 진보적 이상인가 새로운 이념 포장인가

『한국의 사상 정세와 새 공화주의』는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등장했다. 책은 6인의 학자·활동가가 참여한 좌담을 엮어, 한국 사회의 사상적 지형을 진단하며 ‘새 공화주의’를 모색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제시하는 공화주의가 단순히 제도 개혁이나 정치 구호의 차원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동향과 전망』이 제시한 것처럼, 그들은 ‘반자본주의’와 ‘반국가’의 꿈이 좌절된 시대에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 혁명” 대신 공화주의적 시민정치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즉, 혁명 대신 광장의 시민정치로 제도권을 변혁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공화주의가 과연 자유주의의 대안일 수 있을까, 아니면 그것의 재포장일 뿐일까? 자유와 평등을 조화시키려는 공화주의의 시도는 오래된 정치철학의 과제지만, 지금 이 담론은 마치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포장된 또 다른 이념 실험처럼 보이기도 한다.

 

공화주의 담론의 이념적 향방

책의 필자들은 한결같이 “사상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구갑우는 반(反)자본주의 혁명의 좌절 속에서 새 공화주의를 실천적 대안으로 제시하고, 백승욱은 자유주의 자체를 비판적으로 재검토하며, 유희석은 공화주의를 자기성찰의 도구로 본다. 장은주는 사이비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극복을 말하고, 황순식은 ‘성장과 평등’이라는 이재명 정부의 모순을 지적하며 ‘비지배 자유’와 ‘호혜성’을 제시한다.

 

표면적으로는 다양한 의견의 교차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인 방향은 한쪽으로 기울어 있다. 이념적으로 보면 이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이자, 진보적 사회민주주의와 신좌파적 공화주의의 접목 시도로 읽힌다. 다시 말해, 이 담론은 ‘국가·시장·시민’을 재구성하려는 새로운 정치철학 실험이지만, 동시에 기존 좌파 사상의 재구성으로도 볼 수 있다.

 

변형된 막시즘의 그림자

특히 “공화주의를 담지한 광장의 시민정치”라는 표현은 그람시의 ‘진지전’(hegemony war)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제도권을 전복하는 대신, 시민사회의 헤게모니를 통해 국가를 재편하겠다는 전략은, 전통적 마르크시즘의 무장혁명 대신 ‘문화적 전복’을 택한 신(新)마르크시즘의 전략과 닮았다. 이런 맥락에서 ‘새 공화주의’는 변형된 막시즘으로 의심받을 여지를 충분히 안고 있다.

 

이재명 정부의 정치적 비전이 이런 사상적 흐름과 맞물린다면, 그것은 단순한 통치철학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정체성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국민주권을 말하지만, 그 ‘국민’의 개념이 자유민주주의적 인격의 총합이 아니라 ‘집단적 의식’의 주체로 바뀌는 순간, 공화국은 자유의 기반을 잃는다.

 

진정한 공화는 어디서 오는가

공화주의는 원래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선을 조화시키려는 고대적 이상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그 본질은 권력의 분산과 상호 견제, 그리고 자기비판적 시민의 덕성에 있다. 그것은 ‘국가를 통한 개혁’이 아니라 ‘국가로부터의 자유’를 중시한다. 이 점에서 볼 때, 새 공화주의가 ‘시민정치’를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특정 이념적 방향으로 시민을 재교육하려 한다면, 그것은 자유를 억압하는 또 다른 형태의 통치철학이 될 수 있다.

 

한국 사회는 분명 새로운 사상적 대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대화는 ‘사상을 위한 사상’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양심을 지키기 위한 대화여야 한다. 공화주의가 진정으로 자유민주주의의 보완이 되려면, 권력의 집중이 아닌 분산, 이념의 선전이 아닌 양심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한국의 사상 정세와 새 공화주의』는 사상의 실험으로서 의미가 있지만, 그것이 정권의 사상적 변명이 되거나 이념의 재포장이 된다면, 우리는 또 한 번 ‘공화’를 빌미로 자유를 잃게 될 것이다. 진정한 공화는 사상이 아니라, 자기비판과 양심의 자유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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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공화주의’라는 이름의 사상 실험은 위험한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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