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적 세계관으로 바라본 한국 사회의 분열과 ‘강퍅함’의 문제
- 데스크칼럼/양봉식 국장
@ pixabay
한국 사회의 갈등은 단순한 이념의 충돌을 넘어, ‘마음의 상태’에서 비롯된 더 깊고 본질적인 위기를 드러내고 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하는 갈등의 뿌리에는 좌우의 사상적 차이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 안에 형성해온 ‘생각의 틀’ - 즉 인식 구조 - 을 결코 내려놓으려 하지 않는 태도가 자리하고 있다.
진실을 향한 열린 태도가 사라지고, 자신이 이미 가진 신념을 방어하는 데만 몰두하는 사회는 결국 진리를 잃어버린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남는 것은 불신과 분열뿐이다.
우리는 삶을 살면서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로 자기만의 인식 구조를 만든다. 문제는 이 틀이 거의 종교처럼 신성시될 때 일어난다. 새로운 사실, 혹은 기존 전제를 무너뜨리는 증거가 제시되어도, 사람은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길 꺼린다.
왜냐하면 그 사실이 자신의 세계관을 흔들고, 편안하게 구축된 심리적 안전지대를 붕괴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진실을 부정하는 쪽을 선택하기도 하고, 기존 신념에 부합하도록 사실을 재조직하기도 한다.
이것을 성경은 ‘견고한 진(陣)’ 혹은 ‘생각의 요새’라고 말한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생각의 진이 영적 싸움에서 가장 강력한 적이라고 말하며,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이론과 생각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선언한다(고후 10:4–5). 이 견고한 진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사람 마음 안에서 자라난 완고함이다.
구약의 출애굽 사건에서 바로의 마음이 강퍅해졌다고 반복해 기록되는 것은 상징적이다. 하나님은 모세의 기적을 통해 수차례 경고하셨지만, 바로는 자신의 통치 욕망과 두려움, 고집에 따라 그 표적의 의미를 거부했다. 마음이 강퍅하다는 것은 단순히 “듣기 싫어한다”는 정도가 아니다. 스스로 마음을 굳게 만들고, 그 굳어짐을 하나님께서 결국 내버려두셨다는 의미에 가깝다.
오늘 우리가 목도하는 한국 사회의 모습이 이와 다르지 않다.
현재 한국 사회는 좌우 진영이 각자의 ‘견고한 진’을 쌓아 올리고 있다. 동일한 사건과 자료가 제시돼도 완전히 서로 다른 해석으로 나뉘며, 상대가 제시한 사실은 무조건 가짜라고 단정한다. 법조계에서 드러나는 조작 증거, 특검·검찰 수사의 모순, 언론의 명백한 왜곡 보도조차 각 진영은 자기 서사에 맞게 조정한다. 사람들은 사실 자체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이미 가진 신념의 틀에 맞추어 왜곡하거나 삭제한다.
이것이 바로 강퍅한 마음의 시대이다.
강퍅함의 본질은 진리를 거부하는 마음의 자세에 있다. 성경에서 강퍅함은 언제나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 진리로부터의 이탈, 그리고 공동체의 파괴로 이어졌다. 강퍅한 사람은 상대를 대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진리를 대적하고 있는 것이다. 출애굽기의 바로가 그랬고, 예레미야 시대 유다 백성이 그랬으며, 예수님을 향해 마음을 닫았던 바리새인들이 그랬다.
한국 사회의 분열 또한 마찬가지이다.
좌우 어느 쪽이든, 진리 그 자체보다 자신의 세계관을 방어하는 데 더 큰 관심을 가진다면, 그 마음은 이미 강퍅함에 빠져 있다. 상대가 하는 말은 무조건 틀렸다고 생각하고, 동시에 자신은 무조건 옳다는 착각 속에 갇힌다. 진리가 내게 무엇을 말하는지는 듣지 않고, 내가 이미 믿고 싶은 것만 듣는다. 이런 마음은 사회 전체를 불신의 늪으로 빠뜨린다.
성경은 이런 상황에 대해 “너희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고 말한다. 진리는 인간을 자유롭게 하고, 견고한 진을 무너뜨리며,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진리가 자유케 하기 위해서는 먼저 진리를 향해 마음을 열어야 한다. 강퍅한 마음을 가진 사회는 이 과정 자체를 거부한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강퍅한 마음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작은 고집이 굳어져 편견이 되고, 편견이 공격성으로 변하고, 공격성이 결국 자기 세계관을 절대화하는 교만에까지 이른다. 그 결과는 분명하다.
가정이 무너지고, 교회가 갈라지고, 사회가 분열된다.
@ pixabay
지금의 한국 사회는 바로 이런 위험한 지점에 서 있다.
국가적 위기, 경제 불안, 정치적 불신이 겹쳐진 시대에 사람들은 서로를 신뢰하기보다 자신의 진영을 절대화하고 타인을 적대시한다. 진영이 곧 신앙처럼 되고, 이념이 곧 진리처럼 되는 오염된 문화가 우리 곁에 자리한다. 이념이 사람을 지배하면 사람은 반드시 진리를 잃는다.
기독교적 세계관은 진리는 인간의 판단 위에 있고, 인간의 신념보다 크며, 어떤 이념보다도 절대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은 어떤 상황에서도 진영의 소리가 아니라 진리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이는 상대 진영을 무조건 비판하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내 안에 있는 강퍅함을 먼저 살피라는 요청이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내 생각의 진”을 무너뜨릴 때,
비로소 우리는 공동체의 회복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
앞으로 한국 사회가 치유되기 위해서는 이념적 승리보다 먼저, 마음의 회복이 필요하다.
강퍅함을 내려놓고 진실을 받아들이는 용기, 사실을 사실로 인정하는 정직함, 상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겸손이야말로 공동체를 새롭게 하는 힘이다. 성경이 말하는 변화는 언제나 먼저 마음에서 시작된다.
지금은 각자의 견고한 진을 세우는 시대가 아니라, 그 진을 무너뜨리고 진리가 길을 내도록 허락하는 시대이다. 강퍅한 마음을 내려놓고 진실을 향해 귀를 여는 민족만이 분열을 넘어 하나됨의 미래로 걸어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