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배, 독재가 점령하지 못한 ‘마지막 성소’
- 정권 교체의 도구가 아닌, 인간 존엄의 최후 보루로서의 존재 방식
데스크 칼럼/양봉식 국장
베네수엘라의 현대사는 우리에게 아픈 질문을 던집니다. 국가가 신이 되려 하고, 이념이 구원의 자리를 찬탈하며, 공포가 일상을 지배할 때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지난 수년간 베네수엘라 교회가 걸어온 길은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정직하고도 강력한 대답이었습니다. 그들은 총칼을 들고 거리에 서는 대신, 가장 낮은 곳에서 ‘예배’를 지켰습니다. 그리고 그 예배는 독재가 결코 점령할 수 없었던 자유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국가라는 ‘거짓 신’에 맞서는 신앙의 언어
독재의 본질은 ‘전체주의’에 있습니다.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은 시민의 식탁부터 영혼까지 모든 영역을 국가의 통제 아래 두려 했습니다. 그들은 국가를 구원자로, 지도자를 메시아로 포장하며 절대적인 충성을 요구했습니다. 이때 교회가 선택한 저항은 정치적 구호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국가보다 크시다”는 지극히 당연하고도 근본적인 신앙의 고백이었습니다.
이 고백은 베네수엘라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인간의 존엄은 국가가 시혜적으로 베푸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로부터 부여받은 침해 불가능한 권리라는 선언이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체제의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이다”라는 내러티브는 독재가 요구하는 절대 복종의 논리를 근저에서부터 무너뜨렸습니다. 교회는 정권과 싸운 것이 아니라, 정권이 세운 ‘거짓된 세계관’과 싸웠던 것입니다.
예배, 공포를 해독하는 ‘영적 환기구’
독재 치하에서 가장 무서운 병은 ‘공포의 내면화’입니다. 이웃을 믿지 못하고, 말 한마디에 검열을 거치며, 스스로를 무력한 존재로 규정하게 만드는 것. 베네수엘라의 예배 공동체는 이 독성 강한 공포를 씻어내는 환기구 역할을 했습니다.
그들의 예배는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감시를 피해 모인 거실, 낡은 기타 하나와 닳아버린 성경책이 전부였던 소그룹 모임들. 하지만 그곳에서 사람들은 ‘탈(脫)공포’를 경험했습니다. 세상은 침묵을 강요했지만, 예배는 “너의 부르짖음을 하나님이 들으신다”고 속삭였습니다. 세상은 그들을 번호표 달린 배급 대상자로 보았지만, 예배는 그들을 천하보다 귀한 영혼으로 환대했습니다.
찬양은 체제를 조롱하지 않았으나, 체제가 주입하는 절망의 서사를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예배를 통해 내면의 자유를 회복한 사람들에게 독재자의 위협은 더 이상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빵의 나눔’과 ‘기억의 연대’
베네수엘라 교회의 영성은 공중에 붕 떠 있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굶주린 이웃의 식탁 위로 내려앉았습니다. 국가의 배급 시스템이 붕괴하고 상점의 매대가 비어갈 때, 교회는 기꺼이 ‘빵을 나누는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정치 운동이 아니었으나, “국가만이 당신을 먹여 살린다”는 독재의 가장 큰 거짓말을 삶으로 반박하는 행위였습니다.
또한 교회는 ‘기억의 저장소’가 되었습니다. 수감과 고문, 가족의 실종을 겪고도 어디 하소연할 곳 없던 이들에게 교회는 “여기서는 말해도 된다”는 안전한 품이 되어주었습니다. 슬픔을 함께 울어주는 목회자들의 ‘동행’은, 국가가 지워버리려 했던 고통의 기록들을 생생한 역사의 증언으로 보존해냈습니다. 이 기억의 연대는 훗날 사회 재건의 가장 소중한 도덕적 자산이 될 것입니다.
독재 이후, ‘상처 입은 치유자’의 길
이제 베네수엘라는 긴 터널을 지나 새로운 아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800여 명의 정치범과 목회자들이 석방된 것은 그 서막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과제는 권력의 주인이 누구냐가 아니라, 무너진 사회적 신뢰를 어떻게 다시 세우느냐에 있습니다.
베네수엘라 교회는 지난 세월 동안 이미 ‘그다음 사회’의 미니어처를 살아내고 있었습니다. 복수 대신 회복을, 승리 대신 화해를 선택하는 예배 공동체의 질서는 독재 이후의 사회가 지향해야 할 나침반입니다. 권력은 지고 정권은 바뀌지만, 고통받는 이 곁을 지키며 인간의 품격을 사수했던 교회의 헌신은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사람을 지키는 것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사례는 우리에게 교회의 본질적 사명이 무엇인지 일깨워줍니다. 교회는 체제를 무너뜨리는 주역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체제가 무너뜨리려 했던 ‘사람’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지킨 그곳에서, 독재는 더 이상 발붙일 자리를 잃었습니다.
예배는 세상을 바꾸는 도구가 아닙니다. 예배는 인간을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세워, 그가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를 확인시켜주는 거룩한 시간입니다. 그 존엄을 깨달은 한 사람이 공포를 이겨낼 때, 세상은 비로소 변하기 시작합니다. 베네수엘라의 어두운 밤을 밝힌 것은 거창한 혁명의 횃불이 아니라, 어느 지하 거실에서 나지막이 불리던 찬양의 불빛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