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19(일)
 
  • 다섯 작가의 시선으로 복원한 ‘숨겨진 믿음’... 문학의 언어로 틔운 통일과 복음의 불씨

침묵 속에 갇힌 이름, ‘숨김표’라는 기호 뒤에 숨은 진실

세상에는 차마 소리 내어 부를 수 없는 이름이 있고, 드러낼 수 없어 기호 뒤로 숨겨야만 하는 진실이 있다. 비밀을 유지해야 하거나 밝힐 수 없는 사항임을 나타내는 문장 부호 ‘숨김표(××)’. 문광서원에서 펴낸 신간 단편소설집 『숨김표-숨겨진 북녘의 이야기들』은 이 차가운 기호 뒤에 몸을 숨긴 채, 죽음보다 강한 신앙을 지켜온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의 삶을 문학적 서사로 길어 올린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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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단순히 북한의 실태를 고발하는 보고서가 아니다. 오히려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장 선명한 신앙을 소유한 이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어루만지는 위로의 노래에 가깝다. 노은희, 김서하, 이수현, 장선영, 목명균 등 다섯 명의 작가는 저마다의 마음속 서사를 엮어, 목소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대신한 뜨거운 증언을 완성해냈다.

 

다섯 빛깔의 서사, 고통의 땅에서 피어난 희망의 꽃

책에 수록된 다섯 편의 단편인 「한 사람의 기도」, 「증인」, 「기도의 숲」, 「검은 배」, 「당신은 행복하십니까」는 각기 다른 각도에서 북녘의 종교 현실을 조명한다. 작가들은 극적인 사건을 나열하기보다, 거대한 체제 속에서 개인이 마주하는 신앙적 갈등과 그 안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공동체적 연대를 그리는 데 집중했다.

 

허구의 형식을 빌리고 있으나 실제 선교 현장의 생생한 증언들을 토대로 구성된 이 작품들은 사실보다 더 사실적인 ‘기록문학’의 성격을 지닌다. 설송아 소설가의 말처럼 이 책은 단순한 개인의 체험을 넘어 “한반도의 아픔을 환기하는 서사”로 승화된다. 독자들은 책장을 넘기며 북한의 신앙인들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고단한 삶에 작은 희망의 빛을 보태는 여정에 동참하게 된다.

 

무당의 방에서 울려 퍼지는 주기도문의 역설

소설 속에는 신앙을 억압받는 환경 속에서 미신과 무속에 의존하게 되는 북한 주민들의 비극적인 단면도 담겨 있다. 무당이 된 보미 할머니의 이름이 유명해지고, 몸속에 신이 들어왔다는 대목은 읽는 이의 마음을 서늘하게 한다.

 

그러나 이규창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고백처럼, 그 불편한 현실은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고 그분의 나라가 북한 땅에 임해야 한다”는 절실한 기도로 독자들을 이끈다.

 

소설은 보미가 주님이 이끄시는 삶을 살기를, 그리고 모든 인물이 증인의 삶을 살기를 염원하며 무릎을 꿇는다. 이는 통일한국이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기를 바라는 거룩한 소망과 맞닿아 있다. 이 책은 남북한이 반드시 통일되어야 하는 이유를 정치적 구호가 아닌, 인간 존엄과 신앙의 자유라는 보편적 가치로 묵직하게 웅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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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이수현. 목명균. 김서하. 노은희. 장선영 작가-문광서원 제공

 

재미를 넘어 진실과 사랑으로 읽는 책

노은희 작가는 출간 소감에서 “이번 소설집은 목소리를 잃은 사람들을 대신한 기록”이라고 밝혔다. 작가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되돌아보며 쓴 이 글들은, 독자들에게 잘 읽히는 ‘재미’보다 문장 사이에 스며 있는 ‘진실함과 사랑’을 보아달라고 간곡히 요청한다.

 

『숨김표』는 북한 종교와 기독교를 연구하는 이들에게는 학문적 통찰을, 일반 성도들에게는 영적 각성을 선사한다. 가장 낮은 곳에서 드려지는 ‘숨겨진 기도’가 언젠가 광장 위에서 ‘찬양’으로 울려 퍼질 그날을 꿈꾸게 하는 이 책은, 분단의 장벽을 넘어서는 가장 우아하고도 강력한 신앙의 도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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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산책] 침묵으로 쓴 가장 뜨거운 고백, 북녘 지하교회의 서사 『숨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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