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19(일)
 
  • “증오의 사슬을 끊고 사랑의 전령사가 되기까지, 50년 세월이 빚어낸 눈물과 소망의 기록”

인간의 존재는 부모 없이 성립될 수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아버지’라는 이름은 든든한 울타리이자 따뜻한 추억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지우고 싶은 상처이자 분노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여기, 한반도의 남과 북, 그리고 중국이라는 서로 다른 체제 속에서 인생의 절반씩을 살아온 한 여성이 있습니다. 최근 저서 <진짜 아버지>(아르카)를 출간한 박예영 사모(오테레사)는 자신의 50년 세월을 관통하는 네 명의 아버지 이야기를 통해 우리 시대에 진정한 ‘화해’와 ‘용서’가 무엇인지 묻습니다. 북한의 ‘아버지 대원수’부터 육신의 아버지, 그리고 영적 아버지를 지나 ‘진짜 아버지’인 하나님을 만나기까지, 그 파란만장한 여정을 세밀하게 들여다보았습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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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한이라는 거대한 울타리, 그리고 첫 번째 ‘아버지’

박예영 사모는 북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곳에서 나고 자란 모든 주민이 그러하듯, 그에게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동으로 주어지는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바로 ‘경애하는 아버지 김일성 대원수님’입니다.

 

“북한 주민들에게 그분은 육신의 아버지보다 더 큰 존재감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직접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 집마다 걸린 초상화를 보며 매일 감사의 인사를 올렸죠. 매스컴과 교육을 통해 주입된 그 이름은 제 가슴 깊은 곳에 ‘존경과 흠모’라는 단어로 새겨졌습니다.”

 

어린 박예영에게 그 아버지는 세상의 전부였고, 절대적인 기준이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리고 박 사모가 그 땅을 떠나기 전까지도 그분은 인생의 처음이자 단 한 분의 아버지로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개인의 선택이 아닌,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숙명이기도 했습니다.

 

2. 가난과 폭력의 그늘 속, 미움의 대상이었던 ‘친아버지’

그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두 번째 아버지는 자신을 무릎에 앉혀 키워준 육신의 아버지입니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박 사모가 성장할수록 가장 미운 존재가 되어갔습니다. 지독한 가난과 북한 체제의 모순 속에서 아버지는 술에 의지했고, 술기운은 곧 폭력과 주정으로 이어졌습니다.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엄마의 출신 성분을 탓하셨습니다. 북한에서 신분이 좋지 않다는 것은 평생 출세할 수 없다는 뜻이었고, 그것이 아버지에게는 큰 한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술이 깨면 엄마를 위해 밥을 짓기도 하는 다정한 분이었지만, 술만 들어가면 돌변하는 모습에 저는 아버지를 원수처럼 미워하며 자랐습니다.”

 

하지만 박 사모는 훗날 한국에 와서야 아버지의 뒷모습에 담긴 눈물을 발견하게 됩니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영하 50도의 혹한이 몰아치는 러시아에서 3년간 노동을 견뎌냈던 아버지 , 게가 상할까 봐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기차를 타던 아버지의 고단한 삶을 말입니다.

 

“제가 탈북한 후에도 아버지는 딸이 보고 싶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수백 리 길을 걸어 혜산까지 오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진심을 알지 못한 채 아버지를 미워하며 집을 뛰쳐나왔고 , 아버지는 제가 당신을 용서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2008년 세상을 등지셨습니다. 제 인생에 가장 가혹한 후회로 남는 대목입니다.”

 

3. 태국에서 만난 ‘세 번째 아버지’와 거부할 수 없는 울림

북한을 떠나 한국으로 오기 전 태국에 머물던 시절, 박 사모는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세 번째 아버지를 만납니다. 바로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놀라운 것은 ‘아버지 하나님’이라는 호칭이 제게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아마 북한에서 ‘아버지 대원수님’이라고 불러왔던 습관 때문이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 하나님 아버지는 제가 이전에 알았던 아버지들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분이었습니다. 그분을 부를 때마다 제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떨림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왜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나’라는 존재를 찾기 위해 방황하던 시간 끝에 만난 진짜 창조주와의 만남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자신이 그냥 좀 잘난 줄로만 알고 살았으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 ‘죄인’인지를 깨달으며 참회와 감격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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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오대원 목사와의 만남, 그리고 ‘오테레사’라는 새 삶

한국에 정착한 박 사모에게 하나님은 네 번째 아버지를 보내주셨습니다. 바로 미국에서 온 데이비드 로스(David E. Ross) 선교사, 한국 이름으로 오대원 목사입니다.

 

“성령께서 ‘오 목사님은 조선의 아버지다’라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목사님은 제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마’ 하시며 먼저 손을 내밀어주셨죠. 그것은 저를 새로운 딸로 삼아주신다는 뜻이었습니다.”

 

오 목사가 지어준 새 이름은 ‘테레사’였습니다. 박 사모는 오 목사의 성을 따 ‘오테레사’라는 이름으로 10년 넘게 중보기도 사역을 하며 살았습니다. 실제로 오 목사는 박 사모의 결혼식에서 친아버지를 대신해 그의 손을 잡고 예식장에 입장했습니다. 그 손은 단순한 의전이 아닌, 사랑과 축복의 손이었으며 또 다른 삶으로의 연결이었습니다.

 

5. 이스라엘에서의 충격적 고백: “주님, 왜 우리가 사과해야 합니까?”

박 사모의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은 2008년 이스라엘에서 열린 세계 기도집회 ‘컨버케이션’이었습니다. 160여 개국에서 모인 2천 명의 그리스도인 앞에서 그는 북한 대표로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은 강력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본인 목사 앞에 가서 무릎을 꿇게 되었습니다.

 

“북한의 지하교회 그리스도인들을 대신해서, 북한이 일본을 미워한 죄, 일본인을 납치한 죄를 대신하여 용서를 구하라는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무릎을 꿇는 순간 눈물이 비처럼 쏟아졌습니다. 놀란 일본인 목사님도 함께 무릎을 꿇고 서로 용서를 빌었죠.”

 

다음 날에는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 앞에서 북한이 핵무기 개발로 세계 평화를 위협한 것에 대해 사과하며 또다시 무릎을 꿇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뒤늦게 억울함이 복받쳐 올라왔습니다. 굶주리고 헐벗은 북한 주민들이 무슨 죄가 있기에 전 세계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하느냐고 하나님께 따지며 울었습니다.

 

그때 들려온 주님의 음성은 명료했습니다.

 

“나는 죄가 있어서 세상에 내려갔니?”

 

아무 죄 없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는 순간, 박 사모는 다시 한번 주저앉아 엉엉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장차 북한을 사용하시기 위해 먼저 겸손하게 만드시려고 그를 무릎 꿇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 크신 계획 앞에서 그는 자신이 그저 작은 도구였음을 깨닫고 무한한 감사를 드렸습니다.

 

6. ‘악의 축’에서 ‘복의 축’으로… 응답받은 기도

박 사모는 북한을 ‘악의 축’이라 부르는 전 세계인의 인식을 ‘복의 축’으로 바꾸고 싶었습니다. 놀랍게도 이스라엘 집회에서 한 미국인 여성 선교사가 다가와 “미국이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불렀던 것을 용서해달라”며 눈물로 사과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그 선교사에게 박 사모의 기도 제목을 전해주신 것입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10월 11일, 1988년부터 이어져 온 북한의 테러지원국 지정이 해제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그 순간 저는 확신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북한도, 일본도, 미국도 모두 사랑하시는 ‘모든 민족의 아버지’라는 사실을요. 하나님 나라에서는 이미 용서와 화해의 선포가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7. 남북통일은 이미 우리 가정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박 사모의 곁에는 17년째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남편 김승근 목사가 있습니다. 숙대 앞에서 ‘킹스컵밥’을 운영하며 학생들에게 ‘숙대디’라고 불리는 남편은 박 사모에게 때로는 남편으로, 때로는 아빠처럼 아낌없는 사랑을 부어주었습니다.

 

“저희는 ‘통일 가정’입니다. 남한 출신 남편과 북한 출신 제가 만나 신학적 교리로 다툰 적 없이 서로 사랑하며 살고 있으니, 이미 우리 가정에는 남북통일이 이루어진 셈이죠.”

 

그는 이제 고향 김책으로 향할 날을 꿈꿉니다. 가서 아직 고향에 남아있을 동생을 찾고, 아버지와 막내 동생의 묘소를 돌보며 친척들에게 ‘진짜 아버지’를 소개해 주고 싶어 합니다. 또한 고향 아이들이 원 없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밥을 해주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품고 오늘도 기도합니다.

 

박예영 사모는 인터뷰를 마치며 독자들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아버지가 있는데도 아버지를 모르는 것은 스스로 ‘고아’가 되기로 결정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탈북자라 불러도, 저의 분명한 정체성은 ‘하나님의 딸’이라는 것 하나면 충분합니다. 이 땅의 모든 아버지가 진짜 아버지를 만나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회복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고난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관통해 온 그의 삶은, 이제 미움을 넘어 사랑으로, 분단을 넘어 통일로 나아가는 살아있는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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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예영(오테레사)

1976년 함경북도 김책시에서 태어나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 7월에 한국에 왔다. ‘고난의 행군’ 때문에, 그저 생존을 위해 육신의 아버지와 김일성이라는 아버지 둘을 두고 북한을 떠난다고 생각했으나, 2차에 걸친 탈북 과정에서 만난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 인생과 이 민족의 진짜 아버지이심을 뼈저리게 깨닫고 만다.

 

남한에 와서 신학을 하고 태백산에 올라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운동까지 펼치면서 “통일코리아는 뉴코리아(New Korea)다”라는 비전을 받았고, ‘통일비전캠프’ 등의 통일운동과 기도 사역에 동참하면서 ‘통일소녀’와 ‘부흥소녀’라는 애칭을 얻었다. 예수전도단 DTS 훈련 과정에서 오대원(David O Ross) 목사를 만나 영적 수양딸이 되어 얻은 이름 ‘오테레사’로 한동안 알려졌고, 2009년 남에서 만난 탈북민 정착도우미 김승근과 결혼할 때 저자의 손을 잡고 입장해준 이는 당연히 오대원 목사였다.

 

통일코리아협동조합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국립통일교육원 교육위원, 코스타 강사 등을 역임했다. 북한에 대한 바른 이해를 도모하고 통일운동을 펼쳐오는 가운데 ‘탈북자’ 대신 ‘북한에 고향을 두고 온 사람들’을 뜻하는 ‘북향민’ 용어가 널리 쓰이도록 앞장서기도 했다. 현재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청년미래위원장, 통일코리아협동조합 이사, (사)평화와 통일을 위한 연대(평통연대) 전문위원, CBMC 뉴코리아지회 회장 등으로 섬기고 있다.

 

2021년 민간통일운동 유공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으며, 2020년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기념 평화 챌린지에 부부가 출연한 영상을 올려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감리교신학대학원 신학석사, 아주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석사, Wesley Theological Seminary(미국 워싱턴DC) 목회학박사이며,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정치법학과 박사과정 중이다. 어려운 북향민들의 일자리 창출을 돕기도 하며, 통일가정을 이룬 남편과 함께 앞선 통일을 살아가고 있다.

이메일 payy21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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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명의 아버지를 거쳐 만난 ‘진짜 아버지’… 오테레사가 전하는 치유와 화해의 대서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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